koasp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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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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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군가를 닮고 싶은 마음에 꿈을 품게 되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이 시대에는 누군가를 본받는 다는 것, 닮고 싶다는 대상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힘든 듯하다. 그러기에 이제는 특별한 대상을 찾아 본받고자 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무관심하게 살았던 일상 속에서 오히려 그 대상을 찾아 그런 삶을 따라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싶다. 평상시에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일상들을 향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그 속에 숨겨진 보물 같은 대상들을 찾아 작은 힘들을 모아 세상이 인간중심으로 흘러가기를 소망하는 물줄기가 만들어지기를 꿈꿔본다.
불타오르는 건물 속으로 소방관들이 뛰어든다. 그들에게 어떤 대가가 있기에 그렇게 하는 것일까? 생명까지도 위협당하면서, 아니 생명을 잃을 위험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불속으로 몸을 던지는 그들에게는 무엇이 있기에 그런 모습을 쏟아내는 것일까? 그들에게도 가정이 있을 것이고, 자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사명감 때문이리라 여겨진다. 결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일상의 영웅들,,,,
그들을 닮고 싶다.
총알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선 군인들이 맨몸으로 뛰어든다. 나라를 위하여, 평화를 위하여, 아니 어쩌면 남은 가족들을 위하여 그렇게 총알이 빗발치는 생사의 기로에서 그들은 처절한 죽음의 현장 그 앞으로 달려간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죽음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이 우리들의 영웅들이다...
그들을 닮고 싶다.
세월호 참사 때는 승무원이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건져 올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고, 그 곳에 있던 선생님들은 제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은 속절없이 죽어갔다.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생명의 고귀함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죽음의 계곡에 자신의 몸을 던진다. 그들 또한 우리들의 영웅들이다...
그들을 닮고 싶다.
얼마 전 중동 전염병인 메르스가 조국을 강타했다. 메르스 병동! 그런데 그 안에 자신은 없고 오직 환자만 있는 의인들이 보인다. 환자를 돌 볼 생각? 보다는 자신을 돌 볼 생각? 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뇌와 심장에는 생명의 존귀함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중이 여기는 그런 세포 따윈 없다. 그들 속에 우리들이 기다리는 영웅은 찾아볼 수도 없다. 힘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만 내가 살아있음이 미안하고 송구스러울 뿐이다.
목회자란 이름의 자리는 언제나 전쟁터이다. 소리 없는 전쟁터이다. 태생적 갑, 을 관계도 나타난다. 뒤바뀐 갑과 을. 나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냥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죽는 것이다. 그래야 살아난다. 성도들은 그래야 살릴 수 있다. 목회자가 죽어야 성도들이 산다. 적당히 죽어서는 안 된다. 적당히 죽는다면, 결코 성도들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없다. 제대로 죽어야 한다. 가끔 성도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내가 확실히 살아나 너무도 쌩쌩하게 움직이는 지독히 못된 개 같은 내 인생이 보였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스스로 세운 권위의 자리에 매몰되어 스스로는 결코 낮아질 수 초차 없는 자리에서 하늘의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하늘의 종으로 자처하는 내 인생...
나는 그 옷을 벗고 싶다. 아니 이제 우리 모두가 그 옷을 벗어버리기를 제안한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인간존엄의 자리를 회복하는 그 날까지 끊임없이 처절한 몸부림으로 죽지 않고 살아있는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한 사람으로 서고 싶다. 더 이상 나를 위한, 나의 가족을 위한, 나와 관련된 그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고귀함을 위해 오늘도 나를 벗어버리는 삶을 위해 혹독한 자기 채찍을 들어 호된 훈련을 통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작은 움직임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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