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의 고통 그리고 치유

조규남 편집위원 승인 2013.03.11 11:56 의견 0

     말세의 고통 그리고 치유

 

 

 

 

 

- 플러스인생(신앙계) 2013. 1월호 특집 -

 

 

 

 

 

 

인간의 궁극적 관심은 행복이다. 행복은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고통과 더불어 시작되고

고통으로 끝난다. 사람의 출생과 죽음을 보아도 그렇고, 살아 숨 쉬는 동안 우리가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것은 고통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플러스 인생’의 행복을 만들기 위해 행복의 마이너스 요소인 고통을 할 수 있는대로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고통을 치유

하지 않고 우리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선결과제가 있다. 고통의 원인, 그 출처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치유가 가능하다.

 

 

 

인간의 삶에서 겪게 되는 고통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외적인 것으로서, 물질계에서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자연 재난들이 그것이다.

지진과 기근 그리고 이상 기후로 인한 재해들은 말세에 나타나는 특징들임을 이미 성경(마태복음 24장)에서 예고하고 있는 자연

계의 현상들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들이 더욱 고통스러워하는 것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내면에서 겪고 있는 정신세계의 문제들

이다. 이 역시 이미 2천 년 전에 사도 바울을 통해 ‘말세에 임할 고통들’에 대해 예언적으로 성경에 기록돼 있다. 지금이 말세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이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현상을 아래의 말씀처럼 그대로 현실 상황에서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모데여, 그대는 다음에 적는 사항을 잘 분별해 두시오. 마지막 때가 이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사는 일이 매우 어려워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기심에 빠지고, 돈이면 전부라는 풍조가 범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만과 과장을 일삼고 하나님

을 비웃으며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나쁜 인간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또 그들은 완고하고 절대적으로 남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문제만을 일으키고 부도덕한 생각으로 가득 찬 인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난폭하고 잔인한

행동을 하며 착하게 살려는 사람들을 비웃을 것입니다. 그들은 친구를 배반하고 화를 잘 내며 허풍을 떨기 일쑤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보다는 오히려 쾌락을 즐기는 데 시간을 보내려 하고, 교회에는 나가지만 자기들이 들은 것 가운데 어느 하나도 믿으려 하

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가까이 하지 마시오.” (딤후 3:1-5, 현대어성경)

 

 

 

사실 물질계의 자연 재앙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힘들지만 마음의 고통은 크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

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자의 내면적 정신세계의 고통은 위의 디모데후서에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니니' 라는 전제로 기록

된 말씀과 같이 우리 마음 안의 죄로부터 발생되는 것들이기에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육적인 고통보다 마음으로 겪는 고통이

더 견디기 어렵다. 이것은 우리가 자연 재앙처럼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마음먹기’에 따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

제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는 ‘못 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할 수 있음에도 ‘안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우

리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우리가 싸워야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치유는 우리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마음과 생각의 문제들, 즉 죄로 인한 고통의 문제들이다.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 7장에서 자신의 내면세계

안에 일어나고 있는 선과 악, 두 가지 법의 싸움을 말하고 있다.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벌어진 인간의 죄악과 이로 인해 시작된 인간의 고통 이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인간은 죄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그러나 구원의 길로서 제시된 십자가를 보여줬음에도 인간이 계속하여

고통당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영적으로 암울해져 가는 이 시기에 예수님께 대한 회개와 사랑으로 천국의 모형을 이 땅 위에 보여주고 있는 독일 다름슈탓트의

기독교마리아자매회의 창설자 바실레아 슐링크(M. Basilea Schlink)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 특히 현대에서 인류가

당하고 있는 고통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의 모든 가정과 교회, 공동체, 학교에서 어떤 형태이든지 죄의 결과인 형벌로서의 십자가로 여겨지는 고통이 시작되었으며, 이

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육체에 채워야 할(골 1:24) 그리스도인에게는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십자가의 고통으로서 아무도 이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류를 이토록 죄악에 빠지게 하고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

로 고통을 당하게 만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그것은 사람들이 십자가와 고난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대부분

의 죄악이 바로 십자가와 고난을 거부하는 이유에서 생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와 자기부인은 원하지 않고 편안한 삶과

부, 권력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합니다. 이러한 욕망들은 인생에 어려운 고난을 야기시키게 됩니다. 십자가를 거부하게 하

는 것, 이것은 지구에 하나님의 나라 대신 지옥을 가져오려는 사탄의 가장 교묘한 술책입니다. 우리는 절망과 비참에 빠진 수천,

수백 만의 사람을 봅니다. 그 가운데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곤경에 빠진 이유는 대체로 그들이

십자가를 거부한 데 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거절함으로써 예수님을 거절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4:27)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인간을 파멸시킬 기회를 노

리고 있는 사탄에게 기회를 주게 된 것입니다.”

 

 

 

인간 고통의 출처는 사탄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탄의 전략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에서 떠나 인간의 욕망을 채우라는 인본주의의 방법으로 유혹하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게 하고 죄

가 장성하여 그 죄 속에서 사망으로 멸망케 하는 일이다. 죄가 들어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 죄는 우리 마음 안에 있다. 마귀

는, 죄는 어떻게 인간 안에 들어와 인간을 회유하고 격동시키는가? 축사(逐邪)를 일삼는 어느 이단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 하고

입벌린 채 낮잠자는 동안에 벌려진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는가? 이는 참 어이없는 영적 해석이다. 성령이 바람처럼 움직이듯

이(요 3:8) 육신의 장막 안에 갇혀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영적 존재들은 형태도, 색깔도, 냄새도, 소리도 없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

지도 귀에 들리지도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것들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드러낼 때에야만 우리는 세미한 음성과 움직임 속에

서 그것들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마귀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 가운데 빠지게 하는 것은 은 30냥에 예

수를 판 가룟 유다에게 한 것처럼 우리 마음과 생각에 죄를 품게 하는 것이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

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 13:2)

 

 

 

그러므로 우리 마음과 생각을 다스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죄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의 고통으로부터 치유될 수 있는 유일

한 해결책이다. 이를 위해 인간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기도하고 감사하는 일뿐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

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현대인의 가장 큰 고통은, 특히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서 그리고 교회에서마저도 그것은 비교심과 경쟁심에 의한 스트레스로 시작

된다. 십자가(cross)가 없어져 버렸고, 그 자리에 스트레스(stress)가 대신하여 신본주의적 영적인 근본적 치유가 아닌 인본주의적

심리적인 일시적 ‘치유 행위’가 자리잡아 성령의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해졌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 교회가 어렵게 된 까닭이다. 사

회나 교회나 남은 것은 과도한 경쟁력과 비교심으로 인한 스트레스 뿐이다. 여기에 현대인의 고통이 있고, 치유가 필요하다. 그것

은 마음의 욕심들로 인한 스트레스를 버리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십자가를 붙드는 일이다. 십자가

의 능력은 우리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다 준

다(롬 12:2).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곤경에 처하는 스트레스를 주었을 때 그것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라. ‘악을 선으로’ 바꾸시어 십자가 승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 역사를 경험케 될 것이다.

 

 

 

마귀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생각이 병들어 고통당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치유책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 안에 십자

가 보혈의 사랑,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일이다(빌 2:5).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

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로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 2:2-4)

 

 

 

하나님의 치유 방법은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의 고통에서 치유받기 원한다면 기꺼이 십자가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 십자가 그늘 아래 참 안식이 있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이 없듯이, 십자가의 고통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진정

한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이 사랑을 치유하듯 고통은 또 다른 고통을 치유한다. 상처입은 영혼은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서

만 온전한 치유를 체험할 수 있다(고후 1:4).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만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그 치유를 알 수 있게 하고 하

나님 위로를 경험케 한다.

 

 

 

누구를 치유하고 싶은가? 자칫하면 건방진 교만에 빠질 수 있다. 궁극적인 치유는 주님께 맡기고, 나는 내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찾아가 그와 함께 그가 겪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그리고 그가 험한 십자가 붙들고 최후 승리를 얻을 때까지 함께 동행하며 돌보

는 것이다. 그러기에 누구를 치유하기 전에 내가 먼저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치유의 길

이다. 치유(healing)하려 함부로 덤비지 말고, 겸손히 함께 고난을 짊어져 나누며(sharing), 돌보아(caring) 주도록 하라. 그것이 십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진정한 치유의 길이다. Not healing but sharing and caring! +

 

 

 

 

Abraham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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