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

최성수 편집위원 승인 2012.12.09 18:28 의견 0

 

십자가 옆의 도둑

<도둑들>(최동훈, 15세, 액션, 드라마, 2012)

 

 

홍콩과 부산을 오가며 넒은 무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영화 전체를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세기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고 장물업자에 파는 일을 소재로 삼으면서 ‘복수’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마카오 박(김윤석 분)은 어린 시절 침대 밑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가 홍콩 전문 장물업자 웨이홍에게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리고 와신상담의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에 동업자였던 뽀빠이(이정재 분)에게 또 다른 배신을 경험하고, 결국 아버지 사망 현장에 함께 있었던 첸(임달화 분)을 포함해서 세 사람에 대한 복수의 뜻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영화가 흥미롭고 또 뛰어난 점은 그 과정의 내막이 전혀 드러나지 않게 진행되다가 일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풀어지는 구성이고, 또 복수의 모티브는 마지막에 가서야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굳이 반전이랄 것도 없다. 그래서 보기에 따라서는 범죄 스릴러를 보는 느낌도 받는다. 한편, 도둑들로서 출연한 비중 있는 배우들이 모두 주연처럼 활약하기에 도둑들의 캐릭터는 물론이고 그들의 상호관계에 주목해야만 영화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홍콩 마카오에서 30층 높이의 빌딩을 오르내리는 와이어 액션이나 부산의 건물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펙터클한 액션은 한국 영화에서 기념비적인 장면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이나 <타짜> 그리고 <전우치>에서 보여준 새로운 시도들을 <도둑들>에서도 맘껏 발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니 무엇보다 도둑들의 심리와 세계를 잘 표현한 것 같다. 같은 범죄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도둑들의 세계는 조폭의 세계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겉보기에 조폭은 힘을 추구하고, 도둑들은 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서로 구별되지만, 의리를 중시하는 조폭에 비해 도둑들에게는 의리가 무의미하다. 서로 속이고 속고, 그러면서도 전문적인 기술 때문에 또 서로를 필요로 한다. 협력하는 듯이 보이지만 언제나 동상이몽이다. 속고 속이는 일이 반복된다.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에 도둑이 도둑을 터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홍길동이나 로빈 훗 같은 의로운 도둑도 없지는 않지만, 이것은 부정한 사회에서 정의를 행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예외로 봐야 할 것이다. 의로운 도둑이기에 그들은 공동체를 일구며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돈이라는 것이 힘과 달리 사람을 더 치졸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힘은 잔인한 면이 있고 집단적인 성격을 갖는데 비해, 돈은 개인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돈으로 힘을 행사하려고 할 때는 협업을 위해 집단을 필요로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돈은 평생 호의호식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굳이 집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남의 재산에 기생하며 사는 도둑들에게는 그렇다. 그들은 기업을 일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없으면 털고, 있으면 누리는 일이 전부다. 돈으로 돈 먹는 일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정당하다고 인정받는 일이지만, 결코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번영이 아니라 개인의 치부만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위 투자라는 명목으로 돈으로 돈을 버는 일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실상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필요악이며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못된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아무리 개인의 영달만을 생각하는 치졸한 도둑이고 그래서 의리를 배신하는 일을 식은 죽 먹듯이 반복한다 해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바로 사랑이다. 영화가 복수라는 큰 주제 하에 액션과 스릴러적인 성격이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멜로드라마와 같은 다소 부드러운 단면을 느끼게 하는 것은 미모의 여배우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배신과 복수가 지배적이고 또 속이고 속는 일로 가득한 세계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에서 벗어나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불러일으켰던 요소는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마저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필요한 도구로 여길 수 있는 도둑들이었고, 영화 속에서 그런 단서가 없지 않았지만, 진정한 사랑은 그런 당연할 것 같은 예상을 충분히 뒤집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싸운 일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대신해서 스스로를 경찰의 표적으로 드러내는 일, 그리고 스스로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물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준 일이 그렇다. 배신과 음모로 가득하고 이기적인 욕심이 유일한 동력인 세계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둑들의 세계를 다룬 영화에서 교훈을 얻을 것이 무엇이겠는가라고 반문해보지만, 영화의 한 장면에서도 나왔듯이, 십자가 옆에 달려 있었던 도둑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자신의 영달만을 생각했던 도둑들도 십자가 옆에 있을 때, 다시 말해서 죄인을 용서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접했을 때 회개할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 <도둑들>을 보고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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