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볼수록 아찔한 것은 그 때 내가 길과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리고 결코
내 의지와 힘으로 할 수 없는 내 인생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찌 되어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분노하게 되는 것은 그 시절 내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중에도 행여 한줄기의 빛을 붙잡기 위해
찾아다녔던 선배들과 어른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내가 찾아가 진지하게 삶의 방향을 물었을 때
모두 한결같이 "돈만 벌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지금 죽어라고 공부하는 거다." 라고 말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그 당시 한 사람만이라도
"얘, 좀 어렵지만 끝까지 정직하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해라. 남들이 다 간다고 하여 무조건 따라가지 말고
언제나 인생의 참 행복이 진정 무엇인지를 네 스스로 계속하여 묻고 짚어보고 두들겨보면서 한걸음씩 천천히
걸어가거라. 세상의 흔들림에 뒤섞여 혼돈 속에 빠지지 말고 너는 네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묵묵히 가라.
힘들지만 현실의 일시적이고 얄팍한 것들에 결코 타협하거나 무릎 꿇지 말고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길을 가라.
이것이 승리의 길이요, 성공하는 인생을 향해 네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의 길이다." 라고 말해 주었다면
내 인생의 변화는 좀더 일찍 시작될 수 있었고,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한 인생의 삶을 향유했을 것이니까요.
예전 어른들은 설움 중에 '집없는 설움'이 가장 큰 설움이라고 말씀하셨고, 사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즘 집을 가졌으나 집이 없는 것 이상으로 오히려 집으로 인해 고통받는 삶이 하우스 푸어(house poor)입니다.
에듀 푸어(edu. poor)란 신종어는 하우스 푸어처럼 많은 교육을 받았으나 오히려 그 교육들로 말미암아
그 삶이 빈곤한 상태에 이르게 됐음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의 사회제도와 교육현실을 그대로 입증해주는 말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우리 아이들은 꿈을 잃어버렸고, 그 자리에 잠만 채우려 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보게 된 외동 아들이었던 나를 끔찍하게 위하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생활도 넉넉한 편이어서 나를 키우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셨지만, 전혀 내 삶을 구속하려 하지 않으셨고,
아들의 미래를 자신의 뜻에 맞춰 움직이려는 짓(?)을 한 번도 하신 일이 없습니다.
그저 내게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베풀어야 할 자신의 몫만 충실하게 담당해 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내 아들들에게 그리 했습니다. 그들에게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심어주려 애썼습니다.
나의 아버지와 내가 자식을 대하는 데 다른 점이 있다면 나의 아버지는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그리 하셨고,
나는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 부득불 그리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만...
지금 이 시대 우리가 희망을 걸어야 할 우리 다음세대의 아이들은 지나친 교육열과
경쟁의식으로 일관된 사회의 교육풍토 구조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 역시 더 큰 불행의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불행하고 앞으로도 불행하게 되는 일을 왜 계속해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입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습니다. 몰라서, 이렇게 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최선의 길이라고 잘 못 알고 있기도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러한 교육의 결과가 어떤 비극을 낳을 것인가를 잘 알면서도 지금의 현실을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도
또는 뛰어넘을 수도 없기 때문에 짐짓 들려오는 진실의 소리를 외면하고 묵인한 채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위 그림에서,
모두가 구름 위의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 야곱의 사다리처럼 구름 위를 향한 줄사다리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이미 올라가 좋다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고, 이제 막 올라가기 위해 친구의 손을 잡아끄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구름 위의 별들은 너무 높은 허공에 걸려 있어서 구름 위까지 올라와서도 역시 잡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맨 오른 편에 혼자 외톨이로 서 있는 친구는 뭔가 좀 다르군요. 약간 외롭게 보이는 이 아이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 바로 옆의 작은 나무 하나 위에 황금빛 큰 별들이 내려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구름 위 허공에 달려 있는 별들을 따러 가지 않았으나 오히려 황금빛 큰 별이 이 아이에게 다가왔습니다.
낭만적인 것이 꼭 사치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방황하는 것이 꼭 비생산적이요 허비의 결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낭만을 잃지 않는 것은 꿈을 잃지 않기 위함이며, 방황하는 것은 진리 아닌 것들 속에서 진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임으로
그 방황은 진리를 만나면 자연히 끝날 수 있는 귀한 순례의 여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때까지는 힘들겠지만...
크리스마스는 메시야를 찾아 큰 별을 따라가는 동방박사의 이야기들이 흥미를 느끼게 합니다.
그들이 따라간 하늘의 크고 밝은 별이 그들의 발길을 인도하였고, 그 별이 머문 하늘 바로 아래 작은 땅 위에는
그 별보다, 그 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더욱 크고 밝은 빛이 내려와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 별을 만나기 위해 아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별이 내려 온 것이니까요.
영원한 진리를 향한 갈망의 갈증으로 목말라 하는 마음과 이를 추구하고자 하는 진실된 삶이 있으면 됩니다.
가난한 마음일 때, 그리고 이 가난한 마음으로 오히려 삶이 풍요로워짐을 알게 되는 그곳에 그분이 와계십니다.
Abraham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