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손은 나를 위해 더럽혀진 손입니다. 그러기에 고마운 손입니다.
3중고(重苦)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내 손을 붙들려고 하는 서니는
내게 한 번만 '아버지'로 불러도 되겠느냐고 물어서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그런 후부터 그는 나와 헤어짐의 끝인사를 할 때면 으레 "그럼, 평안하세요~ 아버지." 하고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호칭을 사용해 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립고 그래서 대신 나를 아버지라 부르며
그렇게 지내겠노라는 그의 생각을 막을 도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엄청 부담스럽게 됐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스승보다 더 끈끈한 관계로 엮어지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외국인 근로자로 와 있다가 나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 진로를 바꿔 지금은 자신의 본국에 돌아가
열심히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인도의 John 목사나 필리핀의 Lito 목사에게 있어서의 내 존재는 역시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겐 마치 사도 바울과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와의 관계처럼 영적 아비(spiritual father)임을
서로의 관계에서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별 부담스러움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녀석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의미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라 사뭇 다릅니다.
이건 혈연의 관계로 시작해보자는 것이기 때문에 더 신경쓰이고 책임감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호비니는 몇 년 전까지 나와 함께 신앙 공동체에 속해 있던 20대의 청년이었습니다.
일반인에 비해 인지 능력이 약간 떨어져 학교도 특수 학교 이외에는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임에서 그에게 말할 기회를 많이 갖게 하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어느 정도 알겠노라고 긍정적 공감을 해주자 그는 신이 나서 더 말하게 됐고,
그리고 그러는 사이 그는 말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나와의 대화에서도 어느 정도의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게 됐습니다. 어린아이의 웅얼거림을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들어도 그 엄마만은 알아듣듯이, 때로 나 역시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언어를 나만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내게 더 집착했습니다.
그는 내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나의 두 아들 다음으로 스스로 자청하여 셋째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와 둘이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될 때 그는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하고서 혼자서 킥킥~ 댔습니다.
"나는요~ 이름은 호비니이고요, 여기 조목사님 셋째 아들입니다."
호비니는 나와의 관계를 스스로 셋째 아들이라고 말했을 뿐, 내게 직접 아버지라고 부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에게 어색한 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니는 호비니와 다릅니다.
직접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에 낯간지럽기도 하고 무척 어색해서 좀 민망스럽다는 것입니다.
내 어렸을 때 아버지의 손은 두꺼비 손처럼 크고 무척 힘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누구든 자신의 손아귀에 한 번 걸려들면 절대 빠져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고
자랑삼아 가끔 옛날의 무용담을 심심치 않게 들려주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 아버지는 내가 부탁하는 모든 것을 그의 두텁고 거친 손으로 다 해내셨습니다.
시장이건 어디건 갈 때면 어린 나의 손을 꽉 쥐고 걸으셔서 내가 아프다고 몇 번씩 말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꽉 쥐었던 손을 약간 풀어줬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 손을 꽉 쥐고 걸으셨습니다.
사진 속에 한 쪽 눈만 나와 있는 애처러운 눈망울 어린아이의 손은 손때가 덕지덕지 더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붙들고 있는 그의 아버지의 손은 더 더럽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붙들기 편하게 오른 쪽 손의
손가락 하나를 아이의 손에 붙잡도록 내주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꼭 힘주어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실수하고 있습니다. 그 어린 고사리 손으로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있어봐야 잠시입니다.
조금만 어려운 상황이 오면 아이는 붙들고 있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토록 약한 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꽉 잡고 있다면 웬만한 일들은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손을 놓지 않고 계속 갈 수가 있습니다. 강한 손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손은 나를 위해 더럽혀진 손입니다. 그러기에 고마운 손입니다.
문제는 내가 아버지를 붙잡고 있는가 아니면 아버지가 나의 손을 붙잡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는 실수하여 그 손을 놓을 수 있지만, 아버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실수도 없이
그 강한 팔과 손으로 나를 목적지에 다다르게 인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버지의 손은 만능의 손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손길이 나를 감싸 줍니다.
아버지의 능력있는 손에 붙잡힌 바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나를 이끄시도록 내 손을 그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아버지의 손, 아버지의 이름에 놀라운 축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Abraham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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