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어린아이처럼 훌쩍거리며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을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맨 아래의 밑바닥,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인생의 밑바닥을 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가장 어려운 상태를 나타내지만 이것을 뒤집을 수 있는 역동적인 가능성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반환점(turning point)으로 받아들여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바닥을 쳐야, 바닥을 치는 힘으로 다시 점프업하여 그 반동의 힘으로
솟구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상승할 수 있는 모티브의 바닥을 치기까지는 계속 추락하는 기분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기에 더욱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막상 바닥에 닿게 되면 이제 더 이상 내려 갈 데가 없고,
이제는 올라갈 길만 남아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맘이 편해집니다. 더 이상 내려갈 데도 없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배 째라~'는 묘한 배짱도 생기고 또 새로운 용기도 용솟음치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 이 시점을 통해 재기(raise up)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감옥에 들어갔거나 죽을 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게 된 후에 사람들이 달라져 나오게 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모든 선원들의 대부 노릇을 해왔던 한국선원선교회의 최목사님이 그런 분입니다.
사실 그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을 거쳐 병상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6개월 여의 시간들이 그에게는
감옥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토록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선원들을 위로하고 소망 가운데 바다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발품을 팔며 분주한 삶을 살아왔던 그이기에 몸이 묶여 활동이 제한된 병상생활은 참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며칠 전 분당 보바스기념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놀라울 정도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아무런 보조기구 없이도 자유롭게 걷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평안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의 마음상태가 그랬습니다.
넓은 휴게실에서 그와 둘이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병상에서의 6개월 동안 인생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가지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노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가족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주위에 아랑곳 없이 소리내어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어린아이처럼 훌쩍거리며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기줄에 여러 마리의 참새가 앉았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땅에 떨어졌어요.
그러나 그냥 떨어진 게 아녜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그저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어요... "
갑작스럽게 참새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처지를 땅에 떨어진 참새 한 마리에 비유하여 담담한 심정으로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아울러 머리카락도 다 세고 계신 하나님께서 많은 참새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
인 자신을 결코 외면치 않으실 것이기에 두려움 없이 믿음으로 굳건히 일어서겠노라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울먹이며 말하고 있는 그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내가 그동안 많은 것을 생각해봤는데 사람들 앞에서 뭐 대단한 일이라고 벌였던 일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알았어요. 내가 그동안 실속없는 일을 많이 했어... 모든 것이 그냥 거품처럼 지나가는 것일 뿐이야.
그보다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했어야 해.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맘이 아퍼."
"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최목사님은 누구보다 풍랑의 바다에서 외롭게 지내는 선원들을 사랑해주셨어요.
목사님이 사랑할 사람들을 열심히 섬기며 사랑하셨다고요. 그러다보니 너무 힘이 들고 탈진하여
이렇게 쓰러지셨던 거에요. 하나님이 좀 쉬시라고... 그러니 그런 말로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사실 그는 선원들만큼 그리고 선원가족들만큼 막상 자신의 가족들을 잘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장의 삶에 대해 가족들은 한 편으로 많은 서운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상처들도 있었습니다.
가장 사랑을 주어야 할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하고 상처를 준 것에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제 3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왔던 그가
이제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들에 대한 본질적인 사랑의 삶을 회복하는 또 다른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그의 기도는 어린아이처럼 아주 단순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가장 필요한 몇몇 단어로
구사되는 그의 기도는 참으로 '원색적인 기도' 였습니다. 얼마나 맑고 투명한 기도이든지...
인생의 모진 풍파를 헤쳐 온 노인 한 사람이 거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 거울 안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퇴색해 바랜 얼굴 모습이 아니라 건강할 때의 원색적인 모습의 얼굴이 비쳐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부질없는 모든 욕심과 허탄함으로부터 그 집착에서 벗어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아들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참 사랑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나의 원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의 우리 모습은 우리가 가장 순수한 젊음을 유지했던 그 시절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
Abraham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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