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해주세요

조규남 편집위원 승인 2012.04.18 13:45 의견 0

"날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해주세요~" 

 

이제 그만 쉬고 싶은 생각 밖에 없습니다.

 

 

 

 

 

 

 

 

그는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이제 그만 쉬고 싶은 생각 밖에 없습니다.

쉬지 않고 달리는 인생열차에서 스스로 뛰어내리고 싶은 것입니다.

 

죽어라고 달려가야 할 목적지도, 뚜렷한 목표나 목표의식마저 없기에

그는 죽음의 길을 택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불과 3개월 만에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다니...

 

작년 말까지도 그는 이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말 표현대로 '폐인 생활' 3,4개월 만에

그는 이제 폐인 생활도 한계점에 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세상에 알린 것입니다.

 

생명의전화 상담원을 통해 자살시도자가 있다는 황급한 전화연락을 받고 그와 통화를 한 후 그의 집에 달려갔을 때

그는 죽음을 끌어당겨 앞에 놓고 있으면서도 막상 죽음이 가져다 주는 공포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그는 그가 자신을 가리켜 폐인 인생이라 말했지만 아직도 영화배우 같은 훤칠한 외모에

격식을 갖춘 대화술을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폐인이기보다 '강남 백수'가 맞는 분위기였습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회사에서 그리고 외국인 회사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그의 표현대로 지구를

일곱바퀴 반이나 돌아다닌 그가 이렇게까지 삶을 포기하려고 한 것은 자신의 사업체를 시작한 후부터였습니다.

착하기만 한 그가 막상 자신만의 독립적 사업체를 이끌어가는 것이 그에게 무리였던 모양입니다.

 

모든 것을 정리한 후 간신히 다세대 주택의 방 두개 짜리를 얻어 들어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그 시점으로부터 그는 가장 극심한 절망감에 싸이게 됐습니다.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들이 끊어지기 시작했고,

최악의 상태로는 가족들에게마저 외면당해 한 집 안에서도 말을 끊고 산 지가 석 달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의욕이 사라지자 스스로 가장의 책임을 회피하게 됐고,

그는 이제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철저한 외톨이가 됐습니다.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고,

밥은 거의 입에 대지도 않은 채 술을 먹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힘을 잃는 듯했습니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그것은 생각으로 끝날 뿐,

그의 몸과 의지는 전혀 움직여주지 않았고, 이 시점에서 그는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지하철 투신 등의 몇 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으나 그럴 때마다 죽음의 공포가 그를 위기에서 빗겨가게 하였고,

이제 더 이상 이마저도 도망갈 길이 없다고 생각되자 '살려 달라'는 구호 요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119구조대와 지역 정신보건센터 등을 통해 그를 향한 긴급 구호작업들이 움직여졌습니다.

그와의 면담이 몇 번 있었고, 그 과정에서 그는 나를 신뢰하는 듯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목사님 말씀만 듣고 그대로 따르면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런데 목사님 가시고 나서 밤지나고 나면 다시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순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이들 아파하고 있습니다.

값비싼 명품만을 찾고, 1등이 아니면 알아주지 않는 세상, 극단적으로 치달리는 양극화 현상의 사회 구조 안에서

우리가 그토록 화두로 떠올리는 '소통(mutual understanding)'은 멀리만 느껴집니다.

 

며칠 전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

봄비치고는 반가움보다 을씨년스러움이 몸에 더 찰싹 달라붙어 기분이 우울해졌습니다.

내 기분이 이럴 때 그는 더 하리라 싶어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착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사님, 제게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뭔지 아세요? 외로움이에요. 아무도 나와 대화해주지 않는 처절한 고독감이에요.

얼마 전 밖에 나갔을 때 길에서 누가 내게 길을 묻더라고요. 내게 말을 걸어주는 그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냥 꼭

안아 주고 싶었습니다. 동네 닭칼국수 집 앞을 지나는데, 유리창 안에 비쳐지는 가족들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배고프다는 생각보다 말이 그리웠습니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제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하고 생각하니... 제 자신 저도 믿기지가 않아요.

사람이 이렇게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구나 하고요... 정말 많은 시간도 걸리지 않더라구요."

 

"그나저나 오늘 비도 오고 날씨도 꿀꿀한데 오늘이야말로 소주 한 병 까세요. 그리고 푹 주무세요."

"아니, 목사님께서 술 끊으라고 하시면서 오늘은 허락하시는 거에요?"

"어차피 오늘같은 날은 누가 뭐래도 술을 마실 거니까."

"ㅋㅋㅋㅋ~"

오랜만에 우리는 서로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그가 갑자기 말을 끊더니 심각한 어조로 그러나 절실하게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날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해주세요~"

".................."

 

그는 지금 자기 자신도 믿지 못 하기에 스스로 통제되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답은 안 했지만 솔직히 내 안에서 웅얼거리는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나도 믿지 마세요. 그러나 그 누가 버릴지라도 하나님만은 결코 버리지 않고 붙잡아주실 거에요.'

 

지금도 귓전에서 '날 버리지 말아주세요~' 라는 그의 애절한 말이 맴돌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의 이 절규의 하소연이 내 가슴에 후회의 비수로 꽂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인생에서 후회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으니까요.

 

그가 지금은 세상의 싸움터에서 패하여 지쳐 있는 상태지만

그래도 아직 그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칼은 자신을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적들을 무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검이 들려지게 된다면 그 칼은 생명을 살리는 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지 얼마 후 참 놀라운 일이, 내게 감격스러운 일이 엊그제 있었습니다.

그가 내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을 물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나와 같은 막다른 밑바닥 상황에서 목사님을 구원해주셨다는 그 하나님께 나도 한 번 매달려보려구요..."

약간 더듬거리며 소년처럼 수줍은 듯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내게 청명하던지...

 

이럴 때야 말로 기독교 목사의 티를 낼 때입니다. 할렐루야~ 만민들아, 부활의 주님을 찬양할지어다!

 

 

Abraham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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