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의 타협

조규남 편집위원 승인 2012.04.18 13:00 의견 0

하나님 아버지의 타협 

 

 

오히려 계속하여 타협을 시도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경우에 따라 우리에게 숨기고 싶은 것도 참으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대담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구약의 경우, 그토록 우러러 보이는 수많은 믿음의 영웅들에 대한 영웅담으로 가득하지만

또한 그들의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공포합니다.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죄로부터 시작하여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

그리고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다윗 왕의 죄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부끄러운 치부의 역사를, 전혀 걸러지지 않은 원색적 사건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와 죄인의 역사로 기록된 성경의 이야기들은 마찬가지로 죄인인 우리에게

더할 수 없이 친밀스럽게 다가와 위로와 소망을 주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 양심을 찌르기도 합니다.

아직 우리 안에는 미처 고발되지 않은 죄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전쟁의 하나님, 진노의 하나님 그리고 심판의 하나님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서 깊은 성경의 맥락을 흝어보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로 점철돼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기에 질투하시고, 진노하시고, 돌이켜 그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해 심판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최종적으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것으로

인간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좀 어려운 신학적 이야기들이죠? 그러나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구약을 계속하여 읽어갈수록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타협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위해 타협하시냐고요? 사랑입죠, 사랑. 인간에 대한 지고한 사랑.

사랑의 하나님,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 그 넘치는 사랑으로 자신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 하나님이 인간의 사랑을 얻기 위해 비굴할 정도로 계속하여 타협점을 찾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에 대해 불신앙 불순종으로 범죄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여 싹 쓸어버리기 전에 엉뚱하게도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인간을 살리기 위한 구실을 찾으며

나름대로의 대의명분을 앞세워 타협을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얘, 제발 내게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만 해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내 이름을 두고 맹세한 나의 이 공의의 약속들을 스스로 철회할 수가 없구나.

만일 그렇게 되면 내 신뢰와 권위는 물론 인간들이 나를 더 우습게 보고 더 멀어지지 않겠느냐?!

얼마나 더 매를 맞아야 돌아서겠느냐?! 그러니 십자가에 흘린 내 아들의 피가 결코 헛되지 않도록 제발...."

 

이미 세상을 떠난 분이지만 북한의 김정일에 대한 이미지는 '꼴통'입니다.

입는 옷부터 정말 꼴통적으로 입습니다.

그가 쉽게 속마음을 내놓고 대화를 나누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절대 자신의 신념과 자리를 이탈하지 않을 사람, 즉 꼴통으로 간주하고

그러면 이제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적반하장 격으로 모든 걸 주면서도 이 쪽이 오히려 저자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이와 같은 모양입니다.

인간은 우리의 생사화복이 그분의 주권에 있음에도 하나님과 타협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 자리만 꼴통처럼 지키면서 내게 복만 주시면 된다는 식입니다.

 

오히려 계속하여 타협을 시도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역시 아브라함에게 백 세에 낳은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얘,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을 통해 이 땅에 수많은 자손을 하늘의 별들처럼 많게 해주겠다.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너의 믿음을 보여다오. 이삭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는 그 믿음의 증표를 내게 보여다오.

그리하면 내가 너를 마음껏 축복할 수 있을 것같구나."

 

그러나 이 시점에서 꼭 알아두어야 할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 때,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셨던 그분은

이제 인간을 심판하시기 위해 심판주로 곧 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타협의 종결입니다.

 

 

 

겸손히 그분의 타협에 응할 때입니다. 겸손은 강자의 논리임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이 아닌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꿇는 자야말로 가장 강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Abraham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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