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나는 틈만 나면 Going Home 음악만 들었습니다
내게 있어 가장 싫고 또 두려운 단어는 '상실'입니다.
마음을 주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는 것에 대한 배반감도 견디기 어렵지만,
누구든 다시는 볼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떠나버리는 상실은 가장 큰 고통입니다.
살아 있기만 한다면 싸우든 말든,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든 말든
그래도 언젠가는 잃었던 것들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죽음은 되돌이킬 기회를 완전 박탈당하는 것이므로 그 단절감으로 인해 더욱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죽음학의 대가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 Ross)의 책, <상실수업>에서
"당신이 살아가면서 무언가 잃어갈 것들에 대해 정녕 두려운가?
하지만 우리의 삶은 결국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실이란 '모두 끝났다' 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의 증거가 된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이럴 때 내 깊은 심연 그곳으로부터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습니다.
"아니, 도대체 무엇을 더 계속 잃어야 한다는 말이야?!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면, 그 상실의 반복과 계속은 그만 멈춰야 하는 것 아냐?!"
사실, 죽은 그녀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바로 얼마 전 교통사고로 말미암은 갑작스런 그녀의 죽음을 사람들이 그토록 슬퍼하는 것은
그녀가 아직 마흔 밖에 되지 않은,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해 조금도 쉴 틈 없이 그렇게 일만 하다 갔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주야로 투잡을 해야 할 만큼 그녀의 삶은 빠듯했고, 그렇게 피곤한 삶이었기에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조금도 힘든 내색없이 항상 웃는 얼굴로 긍정적인 생활태도를 지녀왔던 그녀였기에
더욱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미 과거의 이야기가 돼버렸습니다.
문제는 앞으로의 일입니다.
남편과 헤어져 싱글 맘으로 살고 있었던 그녀에게 남겨진 노모와
이제 초등학교를 갓입학한 어린 아들에 대한 걱정이 더욱 큰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화장터로 가는 길의 장례버스 안에서 죽은 그녀의 남편이 멋쩍게 앞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아무도 앉지 않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잠시 여러 상념에 잠겨 눈을 감고 있을 때
갑자기 옆에 있던 그가 덥석 내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글썽거리며
"목사님, 남아 있는 가족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순간 그녀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퀴블러 로스의 말대로 그녀에겐 아직도 잃을 것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상실의 반복은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유골함을 들고 화장터에서 납골당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그와 나는 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녀를 무척 사랑했던 죽은 그녀의 이모님이 그녀 오빠의 품에서 유골함을 건네받아 그의 품에 안겨주었습니다.
"자네, 이렇게 헤어진 후에도 애엄마가 그리웠지? 납골당까지만이라도 자네가 품에 안고 가게나~"
화장터에서 납골당까지 가는 짧은 거리의 시간이었지만 잠시 그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제 잠시 후면 그는 품에 안고 있는 그녀의 유골함 역시 남겨두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에게 상실의 반복은 계속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상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도 무언가 더 잃을 것이 계속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 계속 잃어가는 상실의 반복은 또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우리의 삶 안에서 내 안에 계속 새롭게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암노루 한 마리가 산등성마루에 망연자실 서 있습니다. 잠시 길을 잃은 듯합니다.
어딜 그토록 쏘다녔을까? 아마 새끼 배를 채워주기 위해 정신없이 돌아다닌 듯합니다.
그 때 어두워진 이 편 세상 너머 저곳으로부터 밝은 빛이 비치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인지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음성이었습니다.
"얘야~,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Going Home'은 드보르 작의 신세계 교향곡 제2악장을 편곡하여 만든 Crossover 음악입니다.
James Last 악단이 연주한 곡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Kenny G의 색소폰 연주도 애절하구요...
그러나 노르웨이 여가수 Sissel의 노래가 좋습니다. 그녀가 부른 이 노래의 가사가 맘에 들기 때문입니다.
"Going Home, going Home. I'm jus' going home. It's not far, yes close by through an open door...
고향집에 갑니다. 나 이제 돌아갑니다. 고향집은 멀지도 않고, 문도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곳엔 직장해고나 근심걱정도, 그리고 그 어떤 두려움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계신 고향집으로 나 돌아갑니다."
요 며칠, 나는 틈만 나면 going Home 음악만 들었습니다.
Abraham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