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17장]선하고 의로운 왕 여호사밧

백봉태 승인 2011.12.14 23:14 의견 0

아사의 뒤를 이어 유다의 제 4대 왕이 된 사람은 여호사밧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열왕기 기자가 ‘그 부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으로 평가한 왕이기는 하지만(왕상 22:43), 열왕기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치세 기간 중 북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의 이야기에 부속해서 그에 관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에서는 여호사밧의 행적이 자세히 기록되고 있는데, 그만큼 역대기에서는 다윗과 솔로몬을 계승한 훌륭한 왕의 표본으로 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군사적인 면에서만 나라를 견고하게 한 것이 아니라, 전 국가적인 신앙 진작(振作)에 힘을 썼는데, 특히 그는 율법 교사들로 하여금 전국적으로 순회하면서 율법을 가르치게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여호사밧의 경건과 진실을 보시고 그의 나라를 강건하게 하시고 그에게 부귀와 명예를 허락하셨습니다.

여호사밧의 지혜롭고 경건한 통치 행위들(1-9절)
【1-2절】여호사밧이 아사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그는 현명한 군주로서 직무를 수행합니다. 먼저 스스로를 강하게 하고 호전적인 이스라엘을 대비하여 유다의 모든 성들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그 아버지 아사가 취하였던 에브라임 성읍들에 수비대를 두었습니다.
【3-6절】여기 기록된 여호사밧의 모습은 그 아버지 아사가 처음 왕이 되었을 때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여호사밧은 군사적인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던 왕이지만 거기에만 마음을 쏟은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건과 국가의 종교적인 진흥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러한 왕이었기에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므로 선한 왕의 대표이었던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알들에게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구하며 계명을 준수하였고, 배교가 심하였던 북 이스라엘을 본받지도 않았습니다. 그 결과 여호사밧은 백성과 하나님께로부터 부와 영광을 받았습니다. 또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며 우상들을 유다에서 제거하였습니다.
【7-9절】여호사밧은 군사적인 정비와 개인적인 경건에 이어 방백, 레위인 및 제사장들을 교사로 삼아 온 유대 지방에 보내어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을 지키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이처럼 모든 백성들이 다 함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고 있는데, 그만큼 여호사밧이 이러한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다의 영토는 사실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율법을 가르치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여호사밧의 강력한 왕국(10-19절)
【10-11절】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호사밧과 유다에게 위엄을 주었습니다. 유다 주변의 나라들, 블레셋과 아라비아 등은 여호사밧과 유다에 대한 복종의 표시로 조공을 가져왔습니다. 블레셋 중에서는 예물을 가져오며 은으로 조공을 바쳤고, 아라비아에서는 많은 양과 염소를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을 보면 여호사밧의 통치 기간은 솔로몬 시대의 영광이 일부나마 회복되었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19절】여호사밧은 점점 강하여졌으며 유다에 견고한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였습니다. 군사와 물자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용사와 군대는 막강하였습니다. 마치 다윗의 부하 장수들을 언급하는 것과 같이 유다 출신 3명의 장수, 베냐민 출신 2명의 장수가 거명되고 있으며 이들 아래에 많은 군사가 있었다고 기록됩니다. 여호사밧의 군대는 전례 없이 많아져 116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장수들은 왕에게 충성스럽고 용맹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으며, 경건한 신앙도 갖춘 자들이었습니다. 가령 유다의 장수 중 시그리의 아들 아마시야는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자’라고 했는데, 이로 미루어 볼 때 여호수아 수하의 장수들은 용맹했을 뿐 아니라 경건하기까지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는 이런 군왕의 경건과 군사력으로 인근 나라들의 도발을 전혀 겪지 않았으며, 전쟁의 징후도 없는 태평한 시대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여호사밧이 우상의 제거와 함께 힘쓴 국가적인 차원의 신앙운동은 무엇이었습니까?
2. ‘그 왕에 그 신하’라고 불릴 만큼 경건한 신앙을 가진 장수는 누구입니까?

◈믿음의 글◈ “가장 부지런한 설교자는?”
“영국 전역에 걸쳐서 가장 부지런한 성직자와 목회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는 바로 사탄이다. 그는 휴식시간까지도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교구에서 떠나본 적이 없다. 당신은 아마도 그가 손을 놓고 쉬고 있는 모습을 본 일이 없으리라. 그는 빈둥거리는 건달이 아니라, 부지런하고 바쁜 농부다. 그러므로 성직자인 당신은 목회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사탄의 근면함을 본받아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이나 착한 사람들로부터 배우려 들지 않는다면, 아마 당신은 부끄럽게도 사탄에게서 사사(師事)받는 목회자가 되고 말 것이다.”
- 휴 래티머의 글 중에서
<참고>
※ 휴 래티머[Hugh Latimer, 1485~1555] 영국 교회의 개혁을 주도한 종교개혁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뒤 루터파(派)와 제휴하여, 헨리 8세, 크롬웰 등의 도움을 받아 개혁파의 지도자가 되어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 에드워드 6세 치하에서는 영국 교회의 신교화(新敎化)를 주도하는 중심인물로 크게 활약하였는데, 특히 설교를 통하여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메리 1세의 구교반동(舊敎反動) 때에 체포되어 이단 심문을 받고 크랜머, 리들리 등과 함께 분살(焚殺)되었다.

◈오늘의 묵상기도
“오늘 한국 교회에서도 전국적인 말씀 사경운동(査經運動)이 일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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