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13장]아비야의 믿음과 승리

백봉태 승인 2011.12.11 22:33 의견 0

역대기는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에 대하여 열왕기보다 세 배나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열왕기 기자는 아비야를 한 마디로 악한 왕으로 간략히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아비야를 신앙적 인물로 묘사하며, 그로 말미암아 북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아마도 아비야는 탁월한 왕도 아니었으며, 또 적극적으로 우상숭배를 타파한 왕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 장에서 나오는 그의 연설은 역대기 기자가 주장하는 신학적 관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 가문에 대한 반대와 반역은 곧 그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는 것이며, 솔로몬의 성전에서 드려지는 율법에 근거한 제사 이외의 모든 형태의 제사들은 우상숭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다윗의 보좌와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 충실한 자는 복을 받고 그렇지 못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수 없다는 것으로서, 바로 그 증거가 그 믿음을 가진 아비야가 자기보다 훨씬 군사가 많은 여로보암에 대하여 거둔 승리였음을 역대기 기자는 역설하고 있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전쟁과 아비야의 연설(1-12절)
【1-3절】르호보암의 뒤를 이은 아비야 역시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남 유다의 르호보암은 죽었지만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아직 이스라엘의 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북 이스라엘은 팔십만, 남 유다는 사십만의 병력으로 대치하여 인간적 관점에서는 남 유다가 상당히 불리해 보이는 싸움이 시작됩니다.
【4-12절】아비야가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에 속한 스마라임 산에서 연설을 합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호와 신앙에 입각한 남 유다가 선민 국가로서의 정통성을 계승한 왕국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분명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권을 영원히 지키시겠다는 변치 않는 언약을 주신 분입니다. 여기서 ‘소금 언약’이라는 말(a covenant of salt)은 ‘소금’이 상징하는 ‘불변성’, ‘방부제’, ‘영원함’ 등의 의미에 근거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민 18:19).
【8-11절】특히 아비야는 여호와의 계명에 입각한 제사장 제도와 제사 의식을 강조하여 여로보암의 행위가 부당함을 책망하고, 그러므로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성전임을 주장합니다.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정당한 레위인들을 세우지 않고 아무나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일곱만 끌고 오면 제사장이 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정당성이 없는 예배 처소와 무자격 성직자를 세운 이스라엘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12절】비록 열왕기 기자는 아비야를 악한 왕으로 기록했지만, 이 연설에서는 분명한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비야의 신앙고백에서 나타나는 분명한 확신은 불리한 전세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승리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유다의 승리와 아비야의 사적(13-22절)
【13-19절】왕과 백성이 모두 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남 유다가 극심한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병력보다 많은 오십만을 도륙하고 점령지까지 넓히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사실 이 전쟁에서 유다 백성이 한 일이라고는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이 나팔을 부는 것뿐이었습니다. 숫자로 보아도 북 이스라엘이 유리하였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유다의 배후에 복병을 심는 등 전략적인 차원에서 볼 때에도 북 이스라엘이 유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약속(민 10:9)을 그들이 신뢰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기서 역대기 기자는 유다가 승리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아비야는 여로보암을 추격하여 북 이스라엘에 속한 땅을 차지할 정도로 이스라엘을 크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20-22절】본 단락은 아비야와 여로보암을 분명하게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열왕기에 있는 결론과는 달리(왕상 15:3) 여기서는 아비야가 받은 축복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비야는 하나님을 의지한 결과로 대승을 거두고 강성하게 되었지만(21절), 반대로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반역한 결과로 심판을 받아 쇠퇴하게 되고 여호와의 치심을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러한 대조를 통해 다윗 언약과 성전 예배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소금 언약으로 맺으신 언약은 무엇이며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2. 아비야는 왜 북 이스라엘의 종교가 하나님이 인정하는 예배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까?

◈믿음의 글◈ “열왕기와 역대기의 역사적 관점의 차이”
열왕기를 이미 숙독한 독자들은 역대기를 읽으면서 다소간 혼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에 대한 평가에서 열왕기와 역대기의 관점이 너무 많이 차이가 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열왕기에서 솔로몬은 그의 우상숭배와 범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분열되게 한 장본인으로 그려지는 반면, 역대기에서는 모든 왕들이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르호보암의 아들인 아비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왕기 기자는 그를 한 마디로 악한 왕으로 규정합니다. 반면 역대기 기자는 그를 참된 믿음이 있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은 왕으로 묘사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역사적 관점의 차이가 그들이 역사 기록을 한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열왕기 기자는 패망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면밀하게 반성하고 교훈을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여러 왕들의 실패와 범죄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으려면 다시는 그런 실책을 범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열왕기의 주요한 기록 목적입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했다가 다시 고국 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 다시 세워져야 할 이스라엘 나라에는 이런 왕들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여러 왕들의 실책보다도 그들의 신앙적인 면모들을 더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열왕기서가 과거지향적이고 교훈적이라면, 역대기는 미래지향적이고 대안적인 역사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에서도 과거 근대사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좌우 편향적인 시각들이 예리하게 충돌될 때가 많은데, 사실은 서로 다른 역사적 관점들이 상호보완적인 것일 수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기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모든 일에 승리하는 길임을 확신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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