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하얀 정글>(송윤희, 2011, 다큐, 12세)
의료 민영화? 의료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말이며 또 사안이다. 내용을 모르면 즐겨보는 신문의 논리를 따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정부의 발표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일자리를 늘리고, 수익을 증대하고, 산업을 발전시킨다고 하면 대체로 통한다. 잘 살게 해준다는 말을 찰떡같이 믿고 대통령으로 뽑아준 대한민국 국민은 여전히 순진한 면이 있다. 또 그만큼 일자리가 필요하고 돈이 필요한 시대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 혹은 여론을 그대로 믿었다가는 큰 일이 날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일이다. 아직은 검토의 대상이지만 국민의 눈치를 보는 단계라 한다. 법 제정이 착수되면, 불 보듯 뻔한 일들이 눈에 선하다. 수요 공급을 가리키는 수치의 나열과 각 언론의 소위 심층보도,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몸싸움 등. 이런 일들에 익숙해지다 못해 식상함을 느끼는 대중들은 누가 끝까지 버틸 수 있는지만을 살펴볼 뿐이다. 그리고 한 표!
그런데 의료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렇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하나는 병든 자를 치료하는 일이었다. 돈 있는 자가 아니라 치료를 받을 만한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제자들에게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자본주의 사회라 자본에 의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 의료 사업은 철저히 복음적인 정신에서 시행되어야 할 일이다. 아픈 자는 치료받아야 하고, 치료비는 어떻게 해서든 지불되어야 한다. 환자나 친지들에게만 부담을 안길 수 없는 일이다. 생명은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고 하면서 각종 낙태나 안락사, 심지어 사형 제도까지 쌍수를 들고 반대하면서, 돈 없어서 생명을 잃는 일을 좌시한다면 모순에 가까운 일이다.
만일 민영화로 민간 자본의 투자가 이뤄지고, 의료업에도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가 적용된다면, 돈 있는 사람은 치료를 받아 오래 건강하게 살고, 돈 없는 사람은 병든 몸으로 시름시름 앓고 살아가야 한다면, 이런 사회는 복음적이 못하기 때문에 개혁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의료 민영화는 이런 일들을 더욱 확대시키고 또 더욱 빠르게 현실화한다. 굶주림으로 딸을 잃어 본 경험을 가진 아빠였던 칼 마르크스의 해결책은 혁명이었음을 잊지 말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실 지금도 사정은 좋지 않다. 국민의료보험제도가 그런 대로 굴러가고 있어서 보편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수익구조가 좋질 못해 전망이 어둡다. 몇 만원이 없어 치료의 기회를 놓쳐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병원에서는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비보험 치료를 선호한다. 보험치료를 원할 경우엔 얼굴을 붉혀야 한다. 고가의 의료기기는 의료비를 높이는 이유이지만, 환자들은 불필요한 지불을 강요받을 뿐이다. 의사간의 숫자 경쟁은 의료인이 아니라 기업가로 전락하게 만든다. 환자는 단지 돈의 숫자일 뿐이다. 건물신축 및 의료장비 구입을 위한 지출비용을 건져내기 위해 고가의 검사를 해야만 하고, 부당한 의료비 청구에 대해 항의하면 의사들의 위협으로 더 이상 치료를 받지 못할 정도가 된다. 영화는 그런 내용들을 소개한다. 소름이 돋는다.
지금도 이렇다. 그런데 만일 의료 민영화가 실시되면? 더욱 악화될 것은 뻔한 일이다. 사실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다. 현직 의사인 감독은 중산층 정도까지는 괜찮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달린 문제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반대로 저소득층은 급속도로 증가 추세에 있다. 가운데 밑부분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중산층이 없으니 결국 국민의 몇 % 안 되는 상류층만을 위한 제도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이 땅에서 이어가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이 사안을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송윤희 감독은 교인이다. 목사도 못한 일을 평신도로서 해냈다. 의사의 양심을 말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적인 책임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의사직을 내놓고 다큐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송윤희 감독은 공공 신학을 영화를 통해 몸소 실천하고 있다. 우리도 영화를 보고 개념 있는 소비자로서 사회의 공적 책임의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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