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이비붐과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사람들은 전쟁 이전의 평화롭고 단조로웠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미국 내 중류층(middle class)들의 안락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이 이 시절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 미국사회는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인권운동가들의 출현으로 인권운동이 확산되고 있었고, 동시에 KKK(Ku Klux Klan, 인종차별주의 백인비밀결사단) 단원들의 활동도 활발했던 때였다. 미시시피를 비롯한 미국의 남부 지역은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하며 기독교를 신봉하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1963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 잭슨시(市)에는 단란한 백인 가정들을 유지하기위한 흑인 가정부들의 희생이 오랫동안 있어 왔다. 잭슨시의 흑인 가정부들은 집안 대대로 물려주는 '물건' 취급을 받았고,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그리고 잭슨시에는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이 앞으로 몇 달 뒤 벌어질 일을 알지 못한 채 가정부 일에 여념 없이 살고 있었다. 잭슨에서 17명의 백인 아이들을 키운 에이블린은 베테랑 "흑인" 가정부다. 그녀의 중요한 임무는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두 살배기 딸 "모블리"를 돌보는 일이다. 엘리자베스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주는 에이블린을 모블리는 친모처럼 느끼지만, 정작 에이블린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최저 임금을 받고, 자신의 집안은 돌볼 새도 없이 백인가정에 헌신하는 에이블린에게 돌아오는 것은, 흑인과 백인이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도록 차고 옆에 흑인 전용화장실을 만들어준다는 얘기다. 어느 날, 엘리자베스의 친구이자 작가 지망생 "스키터"가 지역신문의 <살림 정보 칼럼> 대필을 위해 에이블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동안 아무도 다루지 않았던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에이블린은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거절하지만, 친구 '미니'가 주인집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자, 자신의 얘기를 세상에 들려주기로 결심한다. 에이블린을 시작으로 미니와 다른 흑인 가정부들까지 합세한 가운데, 위험한 진실이 담긴 책 <헬프>는 잭슨시를 넘어 미국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무명의 흑인 가정부에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에이블린. 소설 <헬프>의 한국 발간 및 영화 개봉을 기념으로, 에이블린과의 가상 인터뷰를 진행해보았다. 아직 책 또는 영화를 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각주는 괄호로 표기했다. 참고로, <헬프>는 미시시피 출신 작가 캐이트 스톡킷의 소설이며, 영화 <헬프>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테이트 테일러 역시 미시시피주 출생으로 미시시피의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타임 투 킬>의 프로덕션 어시스턴트로 참여했던 경력이 있다. 캐이트 스톡킷과 테이트 테일러는 어린시절 친구사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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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핼프>ⓒDreamworks |
안녕하세요, 에이블린. 당신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정부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에이블린 : 나는 더 이상 가정부가 아니지만, 어쨌든 고마워요. 아시아인들은 같은 피부색을 갖고 있는데, 한국에도 가정부라는 직업이 있나요?
당연히 있어요. 직업으로서 뿐만 아니라, 같은 피부색을 가졌고, 민주주의 사회지만, 보이지 않는 계급과 차별이 이곳에도 존재합니다.
당신의 영화와 책이 한국에서도 많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스키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용기를 내게 되었나요?
:에이블린 : (한숨) 한마디로 얘기하기는 힘들어요.
저는 오랫동안 가정부로 일해 왔지만, 내가 흑인이라서 당하는 차별에 대해 한 번도 입 밖에 꺼내어 본적이 없었죠. 잭슨에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KKK단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니 한마디로 자살행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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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린(오른쪽)에게 흑인가정부들의 얘기를 세상에 알리자고 제안하는 스키터(왼쪽) |
그런데 어느 날 “힐리”(엘리자베스의 친구이자 잭슨시의 백인여성커뮤니티 리더)가 흑인을 위해 집 바깥에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법안으로 통과시키겠다고 하더군요. 흑인들과 같은 화장실을 쓸 수 없다는 이유였죠. 제게 책을 쓰자고 제안 한 스키터는 엘리자베스나 힐리와는 좀 달랐어요. 그녀는 우리(흑인 가정부들)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 했어요. 그동안 백인가정의 가정부로 일하면서 느낀 점과 부당한 대우들과 같은 솔직한 얘기들을 흑인가정부들의 시점으로 써보자는 거였죠. 그 제안은 제 심장을 뛰게 했지만, 그렇다고 선뜻 승낙할 수는 없었어요.
그로부터 며칠 뒤 태풍이 몹시 치던 날, 힐리의 가정부 미니가 집 안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고, 미니의 괴팍한 남편은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고 심한 폭력을 휘둘렀어요. 주일에 미니가 멍든 얼굴로 성가대에 선 것을 보니까 몹시 서럽더군요. 그때 마침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제 결심에 불을 지핀 거죠.
목사님의 설교말씀에 대해서는 따로 묻기로 하죠. 먼저 이 사건에서 갈등기제로 사용된 것이 ‘화장실’인데요. 화장실은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이자 자연의 본능 앞에 모두가 평등해지는 장소라고도 볼수 있죠. 백인우월주의자인 힐리에게는 전자가 우위에 있었을 것이고, 미니에게는 후자의 기능이 중요했을 것 같군요. 그 밖에 어떤 차별대우가 있었나요?
에이블린 : 당시 흑인들에게 가해진 차별은 상상을 초월했어요. <미시시피 버닝>이란 영화에서 좀 더 심각하게 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그리고 있더군요. 미시시피 잭슨의 백인들은 어려서부터 인종차별 교육을 받고 세뇌되어 자라는데, 심지어 그것이 성경 몇 장 몇 절에 명시되어 있다고까지 배워요. 백인 교회와 흑인 교회가 나뉘어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KKK단에 의해 자행되는 살인, 방화 등과 같은 폭력은 도시 전체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죠. 흑인은 백인과 같은 식수대를 사용할 수 없고, 백인 간호사가 흑인 환자를 치료해서도 안 되며, 흑인 미용사가 백인의 머리를 잘라주는 것도 금지에요. 심지어 흑인 학교와 백인 학교가 서로 책을 교환하는 것조차 안 되죠. 그에 비하면, 화장실은 애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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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식수대를 사용할 수 없었다ⓒ영화 <미시시피 버닝>중에서 |
그렇군요. 그런데 당신과 미니의 모습을 보면, 가정부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다 하지만, 동등한 인간으로서 오히려 백인들의 한심한 행동을 비웃고 측은하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서로 처한 입장은 다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더군요.
에이블린 : 제 집주인 엘리자베스는 고작 23살인데 남한테 지시하길 좋아하죠. 바느질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자기 아이를 제대로 안지도 못하면서 말이에요. 봐서 아시겠지만, 그녀는 친구이자 백인여성 커뮤니티의 리더인 힐리의 눈치를 봐요. 힐리로 말하자면, 미니가 화장실 휴지를 몇 장씩 사용하는지 체크하기 위해 두루마리 화장지 한 칸 한 칸마다 표시까지 해두는 딱한 여자에요. 엘리자베스는 힐리의 부추김 때문에 저를 위한 간이 화장실을 만드느라 자녀 교육 연금까지 깼답니다. 처음엔 미웠는데, 그녀들을 미워하는 것보다 불쌍히 여기는 게 옳다는 걸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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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힐리, 힐리의 어머니, 가정부 미니 |
그날의 설교말씀의 어떤 부분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당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결심을 하게 했나요?
에이블린 : 목사님께서는 그날 모세의 이야기를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해내라고 명하시는 부분이었죠. 모세는 말에 능치 못한 자신의 자질없음을 호소하죠.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사용하셔서 결국 이스라엘을 구해내세요. 목사님은 용기를 내라고 하셨어요. 할 수 없다고 체념하지 말고, 내 이웃을 위해 용기를 내라고. 그때 저는 미니를 보게 됐어요. 그녀는 억울하게 해고당했고, 돈을 벌어오지 않는 한 폭력적인 남편에게 맞으면서 암울한 인생을 보내겠죠. 나 같은 사람이 무얼 할 수 있을까 두려우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리고 목사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도 말씀하셨죠. 책이 발간되고, 엘리자베스에게서 쫓겨나는 순간에도 그 말씀 때문에 엘리자베스와 힐리를 끝까지 미워할 수는 없었어요.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그로인해 잭슨의 현실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되죠. 책이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두자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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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발간 후, 교회에서 감격을 나누는 에이블린(왼쪽)과 미니(오른쪽) |
에이블린 : 처음엔 두려웠어요. 언제라도 KKK 단원이 길 가는 저를 총으로 쏴 죽이거나, 우리 집에 불을 지를 것 같았죠. 책 어디에도 잭슨의 이야기라고 나와 있지 않지만, 모두가 다 잭슨이란 걸 알았어요. 아들이 생전에 늘 “우리 집안에 작가가 나올거에요”라고 말했는데, 그게 저일 줄은 아무도 몰랐죠. (웃음) 그로인해 저 한사람의 인생은 바뀌었지만, 아직 세상을 완전히 바뀌지 않았어요. 세계 곳곳에서는 서로 다른 인종과 국가 간에 인권유린과 학살행위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어요. 저는 단지 제가 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어요. 혹시 당신 주위의 이웃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학대받고 있다면 그것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그리고 그로인해 바로 "당신“의 삶과 당신 ”이웃“의 삶이 동시에 바뀌게 될 거에요.
당신은 대단한 일을 했어요, 에이블린. 분명히 아드님도 천국에서 당신을 자랑스러워 할 거 에요.
이제 당신은 책의 성공으로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은 어떻게 사용할 생각이세요? 혹시 여생을 안락하게 보내기 위해 (백인)가정부를 쓸 생각은 없나요? 마지막 질문은 농담이에요.
에이블린 : (웃음) 나는 가정부로 일하면서 시간당 97센트를 받았어요. 그런데 스키터가 책 발간 후에 나에게 준 첫 원고료가 61달러였어요. 게다가 그녀는 지금까지 매달 수익이 발생할 때마다 수표를 보내주고 있어요. 나는 아들을 잃은 뒤 지금은 혼자서 살고 있어요. 가정부 일을 그만둔 후로는 더 이상 모블리(엘리자베스의 아기)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요. 엘리자베스가 모블리를 안고 와준다면 그녀에게 시간당 1달러를 줄 용의도 있어요. 물론 농담이에요.(웃음)
질문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어요. 처음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목사님의 설교였죠. 하나님께서 이 돈의 사용방법 또한 알려주실 거라 믿어요.
답변해줘서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당신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당신은 친절하고, 똑똑하고, 중요한 사람이에요”
에이블린 : 고마워요.(웃음)
* “You is kind, you is smart, you is important. 당신은 친절하고, 똑똑하고, 중요한 사람이에요”라는 말은 영화 속에서 에이블린이 엘리자베스의 2살배기 딸 모블리에게 늘 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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