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최성수 편집위원 승인 2011.10.06 10:34 의견 0

도가니

<도가니>(황동혁, 2011, 18세, 드라마)

 

영화의 신학적 의미를 말할 때 학자들은 흔히 문화신학적인 측면에서 일반 계시적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는 사도 바울의 말에 근거한다. 예컨대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고, 작열하는 태양을 보며 감격해하며 하나님이 영광을 선포했던 다윗의 시에서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읽어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단지 감탄할 뿐이다. 미학적인 측면에서 거론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그것이 하나님 경험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감탄으로 표현된 미적 경험이 하나님 경험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양자 사이에 주제적인 연관성이 성립해야 한다. 이 일은 감상자 안에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하지만, 이것은 감상자 자신의 성찰과 탐색을 동반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영화의 문화신학적인 의미란 영화미학적인 재현을 통해 하나님 경험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밖에 필자는 영화의 공공신학적인 의미를 주장한다. 공공신학은 교회와 신학의 사회적인 책임을 신학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을 말한다. 사회윤리적인 주제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공공신학의 주제는 윤리적인 측면에 제한되지 않는다. 공공신학은 세상과 교회의 소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공공신학적인 의미는 바로 세상에 대한 교회의 책임과 양자의 소통에서 영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현실을 재현한다는 영화의 본질에 착안한 것인데,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자들에게 공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공적인 영역을 다양하게 조명하며, 또한 공적인 행위를 촉구한다.

영화가 공공신학을 실천하는 것은 영화의 대중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신학자들의 신학함보다 그리고 목회자들의 목회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보고도 방관자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태도다. 미디어를 통해 자주 들은 이야기지만, 부당한 일을 겪는 사람들을 보고도 보지 않은 듯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고 그저 쳐다보거나 아니면 자리를 뜨기도 한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루됨으로 인해서 갖게 될 성가신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보는 자에게는 책임이 주어지는 법이다.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보는 것은 축복이며 동시에 소명이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 안약을 살 정도의 열심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함부로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하지만, 만일 보았다면 결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보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보고도 마치 보지 않은 듯이 사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소명이야기에 빗대어 생각해본다면, 하나님의 심판이며 또한 저주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것을 ‘다행’으로 여긴다면 신앙이 없는 것이다. 살아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죽은 자이다.

<도가니>를 보았다. ‘기쁨의 도가니’ ‘열광의 도가니’ 등과 같이 비유적인 의미에서 흔히 쓰이는 수식어가 없다는 사실은 아마도 독자나 관객의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적인 반응을 섣불리 규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만큼 비극적인 현실을 바라보았던 저자의 착잡한 심정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말없음의 상태, 그 자체를 표현한 것은 아닐까.

작가 공지영은 어린 장애인들이 당한 일들을 듣고 또 보았으며,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 글을 읽으며 배우 특유의 상상력으로 현실을 보았음에 틀림없는 공유 역시 그것의 영화화를 사명으로 삼고 작가에게 영화화를 제안했다. 그리고 마침내 감독을 통해 “그” 끔찍한 현실을 우리들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는 자는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며, 오늘날 교회와 신앙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방관자의 자세로 일관한다면, 자신의 신앙과 교회현실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깨어있다고 하지만 잠자고 있는 것이며, 살아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죽은 것이다. 우리는 왜 교회에 나가는지,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영화 속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면서 내 가슴 속을 파고들었던 두 개의 질문이다.

무슨 말을 하랴, 직접 보고 느끼고 또 부르심에 반응하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겠다. ‘지옥같은 현실’을 보고 난 후 지금 난 숨을 쉬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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