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철을 맞아 해외로 빠져나가는 여행객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이를 틈타 해외 ‘명품’ 쇼핑객들 또한 극성이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올해 1분기 해외에서 쓴 카드 사용액이 20억불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며칠 전 한 일간지가 보도한 바에 의하면, 휴가철을 맞아 샤넬 핸드백 사기 위해 프랑스로 휴가를 떠나는 젊은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 ‘명품’ 브랜드들의 고가 마케팅 정책으로 인해, 국내보다 현지에서 쇼핑하는 것이 항공권을 제하고도 오히려 이익이기 때문이다.
수입 고가 브랜드들에게 한국시장은 한마디로 ‘봉’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시장에서 루이비통 코리아의 순이익 규모가 100배 이상 늘어나는 등, 주요 명품들은 최근 5년 새 연평균 두 자릿수의 고성장세를 유지해 연간 5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 됐다. 얼마 전 루이비통의 인천공항 면세점 유치를 두고 벌어진 두 대기업간의 경쟁은, 국내 명품 시장에 대한 이권다툼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준다.
반면 이들 업체가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어마어마한 수익에 비해 ‘사회 공헌’ 수준은 극히 미미하다. 프라다코리아는 2006년 이후 지난해까지 5년 연속 기부금 실적이 0원이다. 루이비통코리아와 구찌코리아의 기부금도 매출액의 0.01%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 ‘Luxury’는 명품이라는 뜻으로 통용되지만 실제 뜻은 ‘사치’이다. '사치스럽다'라는 뉘앙스를 제거한 명품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사람들은 다름 아닌 사치품 판매업자들이라고 한다. 이것이 ‘명품’ 현상으로 정착하면서 연예인 마케팅 등을 통해 수입브랜드의 고가 전략을 부추기고 소비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를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라고 하는데 자신이 값비싼 재화를 소비할 능력이 있음을 남에게 과시하기 위하여 가격이 상승할수록 더 많이 구입하게 되는 심리를 말한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의 경우 다른 소비를 줄여서라도 명품을 가지려고 애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름이 알려진 고가 브랜드가 자신의 트렌드와 품위를 유지시켜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치와 문명’의 저자 장 카스타레드는 문명의 전환점에서 사치 현상이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사치를 문명 형성과 발전의 동력으로 본다. 그는 “사치는 육체 본능의 욕망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요구다. 사치는 돈을 얼마나 썼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라는 기준으로 판단돼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적 욕구와 적절한 갈망은 산업사회의 동력이 되어왔지만, 물질적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오히려 정신적 빈곤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아굴의 잠언을 보면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는 고백이 등장한다. 부하거나 가난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장 21절은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단순한 명품 구입을 곧장 ‘사치’로 연결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물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보기에 탐스러운 물질은 우리의 주의를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아 죄로 오염시키기 쉽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에 있지 않고 보물이 있는 곳에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마음을 경계하여야 한다.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눅12:42-44)
성경은 청빈한 삶에 대해서도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받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청빈한 삶의 추구와 청지기 정신의 결여로 인해 물질의 죄에 오랫동안 사로잡혀있는 데 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해묵은 논쟁의 핵심은, 부자가 실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에 있지 않다. 오늘 내게 맡기신 물질을 내 것인 양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고, 가난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작년 12월 작고하신 故리영희선생은 일생동안 “검소한 생활, 고귀한 사고(Simple life, high thinking)”를 삶의 신조로 삼았다. 무신론자였던 고인은 생전에 모든 저서 활동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세속적인 가치에 점령당한 기독교를 비판해왔다. 이제 한국 교회와 성도는 부인하기 어려운 날카로운 비판에 겸허히 귀 기울여야 한다.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여전히 소유가치와 존재가치를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품격은 값비싼 물건이나 화려한 겉모습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청빈의 옷을 입고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기는 삶.
교회의 품격과 성도의 품격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쫓을 때 저절로 회복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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