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제물

열정의예배자 편집위원 승인 2011.08.17 12:36 의견 0

창세기에 보면 실제적인 예배의 장면을 담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창세기 4장에 나타나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예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예배나, 제사라는 말이 쓰이지 않고 제물이라는 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3절 아래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어 그 소출로 예배를 드렸고, 아벨은 목축을 하여 양을 제물로 바쳤다는 말씀입니다. 이 첫 예배에서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를 창세기 4장6절-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어떤 제물을 드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인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이 드린 농작물을 받지 않으시고 아벨이 드린 양을 제물로 받으셨다는 말씀을 후대의 사람들이 읽을 때에 가나안의 문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애굽 후에 가나안에 정착한 유대인들을 하나님과 바알에게 같이 제사하는 종교적인 혼합주의에 빠져 들게 되는데 그 원인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롯됩니다. 농사법을 잘 모르는 유대인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농사를 배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풍작을 위해서 가나안인들이 섬기는 바알신에게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농사를 지어 드린 제물이라는 표현 속에는 “바알을 숭배하여 얻은 소산”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까닭은 가인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에는 형식만 있고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없이 드린 제물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제물의 많고 적음이나. 좋고 나쁨을 가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자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히브리서 11장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의 것보다 더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최고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최고의 예배는 무엇이겠습니까? 성가 대원이 한 삼백 명쯤 되고, 오케스트라와 파이프 오르간에, 웅장한 예배당, 최고급 시설에서 드리는 예배를 우리는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최고의 예배란 바로 최고의 제물로 최선을 다해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더 나은 제물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왜 더 나은 제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들의 최선을 다해서 응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에 감사하고, 그 사랑에 답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창조 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우리에게 복 주시고, 우리들을 지키십니다. 이 모든 것들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최선으로 응답하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은 제물의 예배란 예배의 정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즉 예배는 인격적인 만남을 나누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격에 관한 관심이 우리의 삶 속에 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끊임없이 알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께서 나의 삶 속에서 일하실 것을 기대하며, 그리고 예배를 통해 그 하나님을 만나 깊이 사귀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는 예배를 사모하는 예배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잘 안다”고 할 때는 그와 사귐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그에 대해” 훤히 알아도 직접적인 교제가 없으면 “그를 잘 안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하나님을 더욱 더 알고 싶어 하는 갈망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갑니다. 그래서 더 나은 예배는 이웃과 세상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더 나은 제물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려고 할 때에 예배의 삶은 우리들을 참되게, 가치 있게, 아름답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이와 같은 더 나은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목회 나눔 공동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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