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조 목사님이 한국교회에 남긴 도전들

온전한 교회, 온전한 선교를 위한 밀알이 되길 바랍니다

이은창 승인 2011.08.11 21:39 의견 0

제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교통사고로 20대 초반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퇴원한 후 시골집에 머물고 있을 때, 1년 사이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는 아픔이 이어졌습니다. 암 판정을 받은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기도원을 찾아갔지만, 그곳에서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 친구는 기독교에 대한 안티세력이 되었습니다.

그 친구를 어렵게 설득해 교회에 초청했습니다. 그 친구와 예배를 드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친구의 마음에 은혜를 주시도록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날 하 목사님께서 제 친구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예배드리고 나오면서 친구가 앞으로 계속 교회에 나오고 싶다고 말할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친구가 전화로 하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 주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께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도 갑작스러웠지만, 목사님께서 끝내 깨어나지 못하시고 소천하셨다는 소식에 슬픔과 더불어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온누리교회는 내 젊은 날에 신앙의 추억이 깃든 곳이고,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서 많은 은혜와 도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하용조 목사님께서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을 마지막 사역으로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더보이스를 통해 비판적인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사실 이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온누리교회가 해외선교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았기에 실망한 채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온누리교회가 한국교회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처음 교회를 방문했을 때 강대상과 예배방식 그리고 목회자들의 옷차림 등에서 기존교회와 다른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강대상에는 목회자들을 위한 의자들이 있었는데, 온누리교회는 강대상 위의 목회자들의 의자를 단 밑으로 내렸습니다. 목회자도 평신도와 동일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성이었습니다.

예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교회들의 예전보다는 간략하게 진행하면서도 예배순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져 예배에 집중하게 합니다. 예전은 다소 축소되었지만 매달 성찬식을 진행함으로 교회공동체의 본질은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기성 교회의 경우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장로들까지 가운을 착용하지만, 온누리교회는 하 목사님을 포함해 목회자들이 캐주얼한 복장으로 설교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복을 통해 권위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 목사님의 설교방식도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존 목회자들의 경우 일명 ‘홀리 보이스’라고 해서 목회자들이 임의적인 목소리로 설교를 하거나,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방식을 흉내 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 목사님은 일반적인 대화체 형식으로 설교를 해서 설교가 편안하게 성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하 목사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문화를 활용해 비기독인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선교방식을 뽑을 수 있습니다. 온누리교회는 복음의 핵심과 관련 없는 비본질적인 요소들에 대해 보다 자유로운 접근을 시도함으로 기성교회가 거부했던 문화적 도구들을 복음전파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문서사역과 QT운동을 통해 기독교를 보다 대중적으로 만든 것도 하 목사님의 큰 역할이었습니다. 언론을 탄압하던 군사정부시절 ‘빛과 소금’의 창간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으며, 월간 묵상집인 ‘생명의 삶’은 평신도들이 직접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며 묵상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하용조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더 많은 나라와 민족 가운데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회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후배사역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2007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신장투석을 언급하면서 병마에 지쳐 누워있어야 할까 같다고 묻자,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많이 아프다. 대학생 때 휴학할 정도로 폐병으로 고생했다. 독한 약을 먹다보니 간이 나빠지고 당뇨가 생겼다. 간경화로 고생하던 중 간암이 생겼다. 미국에 가서 몰래 간암 수술을 했다. 교인들이 알면 실망할까봐 그랬다. 간암 수술은 다섯 번 했다. 지금은 암세포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사구체가 망가져 평생 투석을 해야 한다. 1주일에 세 번 한다. 병을 생각하면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면 병은 내 발끝에 있다. 제일 좋을 때가 설교할 때다. 아무리 아파도 설교한다. 내가 살기 위해 예수님 얘기를 한다. 불이 난다. 30년동안 병과 싸워 정복은 하지 못했지만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사역이고 선교다.”

하용조 목사님이 떠난 온누리교회는 이제 후임 목회자 선정 등 새롭게 풀어야 할 문제들과 직면할 것입니다. 모세의 역할과 여호수아의 역할이 다른 것처럼 1세대 목회자들을 떠나보내면서 보다 완전한 교회, 보다 온전한 복음과 선교를 위해 다음 세대의 역할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후배 사역자들에게 남겨진 과제며, 선배 목회자들의 신앙을 계승하는 올바른 태도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을 떠나보내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분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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