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4월 27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세에 설교자로 헌신하였으며, 성공회 신부로 서품을 받고 영국 런던 올 소울즈 교회에서 30년 동안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복음주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제(27일) 90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존스토는 목회와 함께 영국성서공회 회장, 영국복음주의연맹(BEA) 회장, 영국IVF의 전신인 대학기독인교류회(UCCF) 총재, 로잔언약 신학과 교육 위원장을 맡으면서 다양한 사역을 진행해 왔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존 스토트는 1974년 로잔대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잔언약의 큰 특징은 사회적 참여에 대한 복음주의 전통을 다시금 회복시킨 것입니다. 사회참여에 대한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가르침을 회복하므로 이후에 복음주의 교회들이 세상 가운데 영향력을 미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존 스토의 매력은 그의 책이 아니라 그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존 스토트는 일평생 설교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공회 신부로서 런던 올 소울즈 교회에서 30년 동안 사역하였는데, 당대의 설교자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와 함께 런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였습니다. 존 스토트는 설교자를 청지기, 반포자, 증인, 아버지, 종의 모습을 가잔 자라고 했으며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설교자의 가장 중요한 태도로 여겼습니다.
존 스토트는 ‘현대 기독교 연구소’를 통하여 시대의 문제를 늘 고민하였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그의 지적인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의 연구는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저서인 ‘제자도’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한국 복음주의도 존 스토트의 지대한 영향력 아래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의 책들은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력을 주었는데, 특히 반지성주의 교회에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존 스토트를 자신의 멘토로 삼는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지성과 경건과 인격이 균형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존 스토트는 저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분이었습니다. 존 스토트는 청년 시절에 찾아온 삶의 표지판이었습니다. 반 지성주의로 흐르고 있었던 교회 안에서 반 지성주의가 비성경적인 사실을 알게 해주었고,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함을 알려주었던 분이 바로 존 스토트 목사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에게 존 스토트와 함께 하였던 20대 초반은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어떤 문제에 대하여 정의하는 그의 간결함은 나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가독교의 기본진리’라는 책으로 만났던 존 스토트와 함께 한 청년의 시기는 신나는 여행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의 리더십’에 대한 소책자를 읽었을 때 받았던 신선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인용을 하면서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릅니다. 뒤이어 읽었던 ‘그리스도가 보는 교회’는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설명한 책으로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교회가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이 책은 나중에 발간된 ‘살아있는 교회’의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줄을 긁고 읽었던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이렇게 20대 초반을 보냈던 존 스토트와 만남은 20대 후반에 더욱 깊어졌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전도사 생활을 하던 시절에 그의 ”갈라디아서“ 강해와 ”에베소서“ 강해는 성경을 보는 눈과 설교를 준비하는 태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주서강해 시리즈는 계속되었습니다.
더 큰 감동은 20대 후반 여름에 만난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그의 책 마지막 장을 덞을 때 눈에서 흘러내라는 눈물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이고 도전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그 책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첫 단추였습니다. 제임스 패커가 말한 대로 옷을 팔아서라도 사야 할 책이 분명합니다.
그 이후에 ‘현대 사회 문제와 기독교적 답변’은 성경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이 책은 존 스토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로잔언약의 실천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 스토트와의 만남은 ‘성령론’에 있어서 신학적 감동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철저한 개혁파 입장을 가지고 있는 ‘성령론’은 마틴 로이드 존스보다 더욱 견고하였습니다. 당시에 어지럽게 정리가 되지 않았던 성령론에 대하여 말끔히 해소하여 주었습니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설교론’에 있어서 그가 강조한 내용, 즉 “진정한 설교는 성경의 세계와 현대 세계 사이의 간격을 좁혀 주는 것이요, 따라서 두 세계 모두에 똑같이 발을 디뎌야 한다.”는 말이 지금도 제 설교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살아있는 교회’와 마지막 저서인 ‘제자도’은 마지막 순간까지 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고 있는 그의 열정을 보여줍니다. 존 스토트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불태웠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살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자신을 바쳤습니다. 이제 그의 뜨거운 외침은 들을 수 없지만 그의 책은 죽어서도 전하는 설교가 될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케서우드는 20세기 5인의 복음주의 지도자라는 책에서 마틴 로이드 존스, 프란시스 쉐퍼,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 빌리 그래함을 뽑았습니다. 그 중 세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남은 두 사람이 20세기의 복음주의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점차로 한 세기가 마감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 관계들도 새롭게 조명될 것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잠깐이지만 가까이서 본 그의 모습이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가 입고 온 옷은 아주 허름하였고, 강의 중에 뛰어 다니는 아이를 안아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존 스토트는 두 가지 기도제목을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성경주석(THE BIBLE SPEAK TODAY) 시리즈를 완성하는 것이고, 둘째는 마지막 날까지 신실한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기도처럼 존 토트는 마지막 날까지 주님의 신실한 종으로 살았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였고, 새를 유난히 좋아하였으며, 한 영혼을 소중하게 생각하였으며, 균형잡힌 기독교를 강조하며 엉클 존이라 불리기를 기뻐했던 하나님의 사람! 존 스토트는 이제 주님의 품 안에서 멋진 파티를 열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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