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편집위원
승인
2011.07.17 07:33
의견
0
학문의 정의는 사실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에서 중요한 것은 테제이며, 그것을 설득하는 일이다. 탐구는 테제를 위한 것이며 또한 설득을 위한 것이다.
한국의 대학교에서 학위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경험하는 일이겠고 필자는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논문 작성에서 가장 많이 지적받는 사항은 형식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 속에서 연구 주제와 동기, 그리고 방법론, 그리고 연구가 어디에 기여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도 정해진 틀 안에서 고려되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창의적이고 설득력이 있어도 다시 써오도록 한다. 석사와 박사과정을 독일에서 보낸 필자는 이런 요구를 한번도 받은 적이 없어서 의아할 뿐이다.
학문을 정의하는 데에 있어서 형식을 요구하는 것은 논문 내용의 명료성과 검증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꼭 그것만이 학문의 방식인가? 비록 형식은 갖추지 못했어도 분명한 논지가 있고, 설득력을 갖추면 되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주장만 있을 뿐 아무런 논지도 없고 또한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는 논문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학회에서는 학회지가 학술등재지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는 한국연구재단에서나 학계에서 등재지에 게재되지 않은 글들에게 더 이상 학문적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을 갖춰야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근대적인 사고의 전형이 아닌가? 포스트모던, 아니 현대인의 사고 구조에서는 오히려 형식을 파괴하지만 분명한 논지와 설득력이 있으면 되는 것은 아닌가? 학문의 세계를 형식에 제한하려는 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철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인물들이 항상 형식을 갖춰 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면, 학문의 정의를 형식에 가둬두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일정한 형식이 전적으로 무시될 수는 없겠지만, 글쓰기 방식의 다원화 현상을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비교적 창의적인 사람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학문의 세계에는 없다. 창의적인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이지만 학문을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에 질식할까봐 학문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학문은 형식에 능숙한 사람만이 견딜 수 있는 세계인가? 그렇다면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를 일독할 필요가 있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무너진 사회에서 예술의 자유를 선언 한 단토의 말에 공감할 수 있다면, 적어도 학문과 일상적 글쓰기와의 관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번역도 학문의 일종이고, 상상력을 통한 글쓰기도 논지가 분명하고 설득력이 있다면 학문적인 논문으로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내용을 보고 평가하는 학문의 세계가 열리기를 꿈꾸어 본다. 이렇게 되면 글쓰기에 매여 학문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더욱 더 풍성한 학문적인 논의들이 생산될 것이다. 학문의 자유는 글쓰기의 자유도 포함시켜야 한다. 학문을 정의하는 자는 결코 제도나 힘이 아니라 테제를 제시하고 또 설득력을 갖추는 자이다.
저작권자 ⓒ koaspora,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