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사회적 대안으로 각광 받아온 ‘마이크로크레딧(무담보 소액대출)’이 세계 곳곳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엔이 2005년을 '마이크로크레딧의 해'로 정한 바 있으며,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무함마드 유누스가 2006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유누스는 1976년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는 대학 주변 마을주민 42명에게 자신의 돈 27달러를 빌려준 것을 계기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 뛰어들어 1983년에는 방글라데시 말로 ‘마을’을 뜻하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라민 은행 고객의 대부분은 방글라데시에서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여성이었다. 그라민 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대출회수율은 한때 99% 가까이까지 이르렀고, 매년 그라민 은행 고객의 5%가량이 빈곤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한다. 지금까지 방글라데시에서 마이크로크레딧을 통해 빈곤을 탈출한 사람이 무려 4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그라민 은행의 실적은 여러 사람들에게 기적처럼 받아들여졌고,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은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은행연대와 신나는조합 등 민간 차원의 마이크로크레딧이 활성화되다가 2009년 휴면예금을 기반으로 한 ‘미소금융중앙재단’이 설립되면서 정부차원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이 시작되었다.
마이크로크레딧이 이처럼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세계의 거대 자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명분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소액대출은행에 몰리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마이크로크레딧으로 들어간 투자금은 2008년 40억 달러에서 2009년 120억 달러로 늘어났다. 쏟아져 들어오는 투자금을 바탕으로 일부 마이크로크레딧 업체들은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인도의 SKS그룹은 마이크로크레딧으로 급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1998년 기금 5만2000달러의 자선단체로 시작한 이 업체는 2006년 미국 실리콘밸리 유명인사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영리업체로 탈바꿈했다. 이후 급속히 사업을 확대해 현재 2200개의 지사를 거느리고 있다. 750만 명의 고객에게 35억 달러의 신용대출을 해주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주식시장에 상장해 3억5000만 달러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실적이 뒷받침되면서 주가도 상승일로였다. 2009년 매출은 2억1200만 달러, 순익은 3800만 달러에 달했다. 주식 공개를 통해 창업자인 비크람 아쿨라도 13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에선 SKS로부터 돈을 빌린 마을 주민들가운데 17명 정도가 잇따라 자살하는 바람에 이 회사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으며, 주 당국은 소액대부업체들에 대한 단속에 들어갔다. 마이크로크레딧 대출을 받았던 이 지역의 한 가난한 여성이 이자 때문에 날로 늘어나는 빚의 굴레에 고통 받은 사연이 폭로됐고, 일부 업체들은 이자수익을 위해 주민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대출을 억지로 떠맡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방글라데시에서는 마이크로크레딧의 상징으로 알려져 온 그라민 은행에 대해 정부가 조사를 명령하면서 큰 파장이 일어났다. 정부가 3.4%의 지분을 가진 그라민 은행이 노르웨이로부터 기부 받은 1억 달러를 자회사에 빼돌린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혐의는 노르웨이 측의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라민 은행은 명성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마이크로크레딧이 본래 추구했던 목적과 달리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이크로크레딧이 신용대출의 한계 때문에 높은 이자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경우 학비대출의 경우 5%, 주택대출의 경우 8%지만, 일반대출의 경우는 20%에 이른다.
마이크로크레딧의 일반 대출 이자율 20%가 최소 30%에서 120%에 이르는 사채 이자보다는 저렴하지만, 가난한 빈민들이 부담하기에는 높은 이자율이다. 서민대출임에도 이처럼 이자율이 높은 것은 마이크로크레딧의 특성상 점포운영과 인건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 전 세계 1008개 소액 서민금융회사를 조사한 결과, 대출 금리의 80%가 영업비용으로 나갔고 순이익은 8%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금리를 받아서 예금 금리와 인건비를 댈 수 있어야만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영업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높은 이자율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빈민대부에 있어서 높은 이자율은 가장 큰 독소 조항이다. 대표적으로 2008년 세계경제위기를 불러왔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도 신용등급이 낮은 계층에게 높은 이자율을 적용했던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이 그 원인이었다.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주택구입자들이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 못해 연체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금융위기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시작된 미소금융 사업은 이자율이 4~5%에 이른다. 낮은 이자율 때문에 연체율이 5%만 넘어도 대출재원을 유지하는 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런 상황 때문에 대출금 상환액을 선순환 구조로 바꾸기 위해서 최소 15~20%로 이자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높은 이자율은 마이크로크레딧이 많은 나라에서 실패하는 원인이 되었고, 오히려 빈민들을 더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 또 다른 사회문제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5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36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37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레25:35-37)
성경은 기본적으로 이자를 취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누구든 경제적 빈곤에 처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에게 대부를 꺼리거나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악용해서 착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 루터도 이자를 취하는 행위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자본은 노동과 결합하면서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고, 그에 따라 자본의 대가인 이자는 점차 정당화되기 시작했다. 칼뱅도 산업대부와 생활대부를 구별해 산업대부에 한해 최소의 이자를 인정했다.
이제 산업화를 넘어 고도의 금융자본시대에 접어들면서 자본은 갈수록 그 위력을 더하고 있다. 자본이 노동과의 결합에서 상품생산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지만, 과도한 이자수익으로 타인에게 노동을 전가하는 악행이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성경을 보면 부패한 이스라엘을 측정하는 지표 중의 하나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고리대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과연 먼 이스라엘 역사에만 등장하는 이야기일까? 지난 26일 경찰은 무등록 대부업체 사무실을 차려놓고 사채놀이를 한 불법사채업자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적용한 이자율은 무려 3476%였다.
마이크로크레딧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자본시장에서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다. 이런 서민금융까지 시장의 원리에 따라 높은 이자율을 적용한다면 그 의미는 당연히 퇴색될 수밖에 없다. 빈민을 위한 은행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는 낮은 이자율을 유지함으로 서민들이 대출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낮은 이자율을 유지해야만 마이크로크레딧은 실패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 사회의 많은 시스템들이 성경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근접할수록 그 사회는 더 건강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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