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비용 걱정할 필요 없다"

남북화해협력정책의 전도사,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코아스포라 승인 2011.05.26 14:54 의견 0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완전히 후퇴하고 말았다. 안보와 화해협력 중에서 안보는 강화되었지만, 화해협력은 사라지고 말았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관계가 높아지면서 금강산 피살사건에서 천안함 사태까지 일련의 사건들은 이미 예고된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두 번이나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을 만나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김대중평화센터의 정세현 부이사장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하며 대북정책이 안보와 화해협력이라는 이중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청년들이 다음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거대담론적 시각을 가지고 리더 훈련을 받을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더보이스 김형호

이은창(이하, 이) : 오랫동안 통일부에서 공직생활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있으신지요?

정세현(이하, 정) : 첫 번째는 대학 때 은사님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외교관이 되려고 대학의 외교학과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에서 은사님이 “외교학과는 학문적으로는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곳이지만 여기는 외교관을 양성하기 위해서 만든 학과는 아니다. 이름은 외교학과지만, 우리나라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국제정치에서 분단이 된 우리의 통일문제를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풀어야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나라 국제정치의 사명이다. 나중에 졸업하고 외교관이 되더라도 분단국가의 지식으로 통일문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통일문제와 관련해 국제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어서 외교학과에 들어갔는데, 71년도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해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대선후보들의 연설을 들으려고 4월 18일에 장충단 공원에 갔었습니다. 박정희 후보가 연설을 끝난 후에 김대중 후보가 연단에 올라와서 연설하면서 야당 정치후보로는 획기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국제정세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남북관계를 이런 상태로 놓아서는 안 된다. 미소 간에도 관계를 개선하고 있고, 미중관계도 개선되고 있다. 남북에도 스포츠 사역이나 기자 교류를 해야 하고, 특히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72년에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지만, 71년에 이미 키신저가 중국으로 잠입해서 그 기반을 다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수년 전에 은사님께서 한국에서 국제정치는 통일문제를 풀기 위해서라고 하셨는데, 바로 저런 입장을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76년 말에 그 은사님(이용희)이 통일원 장관이 되셨습니다. 당시 통일부에서 연구직 공무원을 공채한다고 해서 응시해 통일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통일부 공무원으로 계속 일하다가, 98년에 김대중 대통령께서 통일부 차관으로 임명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김대중 평화센터에 있으니까 어떤 점에서는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 그럼 그때부터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관에 대해서 공감하고 계셨나요?

정 : (꼭 그렇지는 않았죠.) 1971년에 김대중 후보의 연설을 들으면서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정치인들은 국제정치에 어두웠는데, 국제정세에 밝고 정치적인 식견이 높아 감탄을 했었습니다. 이후 남북대화가 시작됩니다. 선거 때 야당 후보가 이야기한 내용을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이 그대로 정책으로 채택합니다. 이산가족상봉사업을 그해 8월에 제안하지 않습니까? 그때만 해도 여야 간에 정책대결이라는 것에 대해 감각이 없었던 때였습니다. 나는 당시에는 국제정치 속에서 통일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75년쯤에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때는 박사과정에 있었을 때였는데, 당시 정부에서 박사과정 학생들만 추천을 받아서 공산주의 이론에 대해서 3개월 동안 오전 9시부터 5시까지 집중적으로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통일부에서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죠. 통일문제에 대해서만 공부했다면 지금 와서 좀 편벽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공산주의 이론이나 체제, 공산주의 경제, 공산주의 군사전략 등에 대해서 폭넓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청년들이 거대 담론에 관심 갖어야 국가적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 : 대학생들을 포함한 청년 세대가 공동체적인 연대감보다는 개인적 성취에 더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청년들이 우리 사회와 나라를 위해 고민하고 섬기는 모습이 필요한데요. 이 시대의 청년들을 위해 고언을 부탁드립니다.

정 :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 때는 너무 거대 담론에 젖어 있었습니다. 60년대 대학생들은 우리가 아니면 나라를 구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취업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일단 일자리가 없어서 졸업하면 실업자로 지내는 것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취직에 목매달아 보아야 대책이 없었습니다.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정도가 출세의 길이었고요. 은행도 수가 적어서 일자리가 거의 없었고, 언론사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습니다. 나라가 무역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무역회사가 거의 없어서 무역회사에 취직한다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학생들이 대폿집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수준이 대단히 높았습니다. 우리는 그걸 호연지기를 키운다고 했는데,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리더로 설 때에 조그만 조직에서도 판세를 크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었습니다. 거대담론을 하다 보면 개념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철학이나 시사문제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고, 영어나 취직에만 관심을 갖고, 사회문제나 나라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개인의 문제에만 몰입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나라가 작아도 경제적으로는 10위권 내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조국의 장래 문제에 관심이 없는 세대가 나라를 이끌어 가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리더반열에 오르지 못할 겁니다. 경제적 동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게 걱정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가 힘이 있는 것은 전체 학생의 2% 내지 5%는 리더로 서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전체가 이런 훈련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전체 대학생이 가령 백만이 넘는다면 그중에서 2-3% 정도만이라도 거대담론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이 : 집권 3년차를 통과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결과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진전시켜 온 남북관계를 후퇴시켰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간단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외형적으로는 ‘비핵 3000’과 ‘그랜드 바겐’이라는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포괄적 타결책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전제로 한 봉쇄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실제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요?

정 :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기본 전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는 국제관계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민족 내부의 관계입니다. 물론 국제문제로의 특성도 있습니다. 분단이 국제적인 원인에서 시작되었고, 통일이 되려고 해도 국제적인 조건이 맞아야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남북은 서로가 같은 동족이면서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보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화해협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책이 이중성을 가져야 합니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안보위주로 국내정치를 끌고 갔기 때문에 설사 남북대화를 하더라도 진의협상이 아니라 의사협상, 즉 가짜협상에 불과했습니다.

노태우 정부처럼 국제정세의 흐름을 타고 안보와 화해협력을 병행했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로 넘어오면서 안보를 중심으로 화해협력을 포기하였습니다. 이후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안보와 화해협력을 병행하는 정책을 10년 동안 펼쳐왔었습니다. 나는 김영삼 정부시절에 대통령의 통일비서관을 지냈습니다. 그분은 너무 북한붕괴론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해 보아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통일비용에 대한 논의가 나왔습니다. 지금 통일세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북한붕괴라는 이야기를 대통령이나 참모들은 하지 않았지만 통일세 이야기가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안에서는 북한붕괴를 염두 해 두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북한 붕괴를 전제한 대북정책은 화해협력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고, 북한붕괴 전에 북한이 도발행위를 하지 않을까 해서 안보만 튼튼하게 하면 된다는 발상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럼 북한에 급전사태가 발생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붕괴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했던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상황에 비춰보면 북한의 내부사정이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북한에 대해서 면밀하게 보지 않는다면 북한의 붕괴를 믿는 사람들은 북한붕괴를 촉진하는 요소만 보입니다. 어떤 체제든지 붕괴 내지 체제 와해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는 항상 있습니다. 사람이 병균 속에 살면서도 혹은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어도 몸에 있는 저항력을 가지고 버티고 있듯이, 저런 국가도 체제생존 능력이나 붕괴 촉진 요인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붕괴 억제 요소와 붕괴 촉진 요소가 내부에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저주하는 마음만 있으면 붕괴 억제 요소에 대해서는 안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미운 사람도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이 보이지 않고 단점만 보이는 것과 똑같습니다. 북한에 대해서 적대 요소만 갖기 있기 때문에 북한 붕괴를 확신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붕괴 억제 요소가 있기 때문에 쉽게 붕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붕괴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앉아있는 저 자리가 지정학적으로도 붕괴 억제 요인이 상당히 많이 작용하게 되어 있는 자리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입니다. 결정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이 오면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1995년도에 북한의 식량난 때문에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을 때, 맨 먼저 지원하겠다고 나섰던 나라가 일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일본이 50만 톤의 쌀을 지원했고, 우리는 15만 톤을 지원했었습니다. 북한이 붕괴함으로 난민이 사방으로 퍼져갈 것이라는 것 때문에 주변 나라들이 난민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먹는 것이라도 해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억제요인과 붕괴요인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어느 쪽이 더 커지느냐에 따라서 붕괴나 유지가 결정되는데, 내부에만 억제요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도 억제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급변사태를 전제로 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입니다.

통일편익으로 통일비용 만회할 수 있다

   ⓒ더보이스 표주현

이 : 이명박 대통령께서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통일세를 신설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장관님께서는 처음으로 ‘평화비용’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갑작스런 통일보다는 적절한 분단관리를 통해 분단비용을 ‘평화비용’으로 대체해 가면 통일 이후 부작용도 최소화 하면서 통일비용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통일비용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정 : 통일세를 거둔다, 통일비용을 준비한다는 그 자체가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통일비용은 지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통일비용이 나가지만 통일이 된다면 북한과의 적대관계가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북한지역을 경제적으로 책임을 지거나 지금보다 더 도와야 한다면 군사적 긴장은 현저하게 완화됩니다. 군사비용이 안 들어갑니다. 그러면 군사비로 들어가는 돈을 통일투자비용으로 돌려쓸 수 있기 때문에 통일비용이 그렇게 많이 안 들어갑니다. 게다가 남북 간에 분단이 종식되고 통일이 완성될 때까지 일정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 기간 중에 통일의 편익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에 퍼센트로 말하면 통일비용은 GDP의 6내지 6.5%가 나가지만, 지금 나가고 있는 분단비용이 4.3내지 4.6%씩이나 되기 때문에 그중에 절반은 통일 된 후에 안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 이후에도 군대는 있어야 합니다.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군대 내에서 쓸데없이 써야 하는 돈을 안 내는 그 부분이 절반 정도는 됩니다. 그러면 실제로 GDP의 6.6내지 6.9에서 GDP의 2.5% 정도는 별도로 낭비성으로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통일비용으로 돌려쓰면 순 통일비용은 GDP의 2% 내지 2.4%정도 밖에 안 들어갑니다. 그런 계산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정부는 통일비용을 그렇게 안 합니다. 투자비용만을 계산합니다. 통일비용이 많이 든다고 전제하고 세금을 걷자고 하는 것이 마치 통일에 대한 많은 열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려고 합니다. 통일비용을 이야기하면서 통일세를 거두어야 한다고 주장은 오히려 분단을 선택하게 하는 분단이데올로기가 됩니다.

통일편익은 경제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남북 간의 긴장이 현저하게 완화되는 경우에는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을 쓸 수 있고, 북한지역을 통과해서 철의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의 자원을 가져와서 싸게 쓸 수 있고, 우리가 수출하는 물류비를 줄일 수 있어서, 연간 11.25%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통일을 하는 경우 연간 많게는 9% 적게는 최소한 5% 가까운 순 성장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이런 계산이 나와 있습니다. 통일비용에서 분단비용을 빼고 그것이 순 통일비용이라고 한다면, 통일편익이 크기 때문에 통일은 남는 장사며 통일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통일비용이 많이 드는 경우는 북한이 붕괴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평화비용을 안 쓰고 경제를 더 나쁘게 만들어서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우리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면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길이 있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KDI가 금년 6월 9날 청와대에 보고할 때 갑작스럽게 붕괴할 때는 2조 3천억 불이 들지만 과거와 같은 남북교류협력이 계속 활성화되는 연장선상에서 통일이 된다면 그 비용의 7분의 1밖에 안 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싸게 먹히는 방식이 있는데, 왜 그렇게 비용을 많이 들이는 통일을 해야 합니까? 우리 국민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면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따라서 통일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고, 그것은 북한의 체제붕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핵문제의 핵심은 남북관계가 아니라 북미수교다

이 : 북핵문제가 긴 시간을 끌어오면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북미수교 등 외교적인 성과를 통해 개혁․개방의 길이 열리면 핵을 확실히 포기한다고 보시는지요?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한 것을 두고 과거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도 계속 핵개발을 했다면서 북한은 어떤 상황에서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 : 나는 여러 번 이야기 한 것처럼 북한이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북미수교가 이루어지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렇게 믿는 것은 종교적인 신념이 아니라 원리가 그렇습니다. 북한은 핵카드를 가지고 자신들이 목표한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북한을 불신하는 사람은 한국에도, 미국에도 많이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수교도 이루고, 평화협정도 얻고, 경제적 지원도 얻은 후에도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을 바보로 아는 것과 똑같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핵을 인정하는 수교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핵카드를 계속 강화한 것입니다.

사실 북핵문제에 있어서 북한은 남북관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북한은 핵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북한은 핵을 가지고 북미수교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북미수교를 해야 미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위협하지 않는다. 그래야 군사비를 줄여서 경제개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북미수교를 원하고 있습니다. 북미수교를 하려면 지금 정전협정을 반드시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합니다. 정전협정이라는 것을 놓아두고는 법적으로 수교를 못합니다. 반드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합니다. 미중 간에도 1979년에 수교할 때 평화조약을 체결했습니다. 1973년에 일본과 중국도 일중평화 5조약을 체결하고 수교를 체결했습니다. 수교할 때는 대부분 평화조약을 체결합니다. 하물며 미국과 전쟁을 했던 6,25전쟁을 했던 상황에서 정전협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놓아두고 수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수교는 정치외교적 인정이지만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되면 군사적으로 북한은 걱정이 없어집니다. 그것을 받아내고 핵은 핵대로 갖는 것을 미국이 그런 식으로 해 줄 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미국을 바보로 아는 것입니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도 핵개발을 계속했다는 것은 북한은 계속 핵카드를 가지고 달성하려는 것이 북한이 남한으로부터 쌀이라 받아내려고 했다고 착각하는 것인데, 그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부수적으로 주겠다면 받는 것이었고, 우리는 우리대로 북한이 더 나쁜 짓을 하지 않고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원만하게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협조하도록 달래기 위해서 우리가 대북영향력을 키우는 차원에서 쌀과 비료를 지원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산가족상봉에 열심히 호응해 왔습니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도 북한이 핵개발을 했다고 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논리는 완전히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북미수교가 북핵문제의 핵심입니다. 북한은 핵문제가 처음 대두되었을 때부터 그것을 요구했었고,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해줄 것처럼 하면서도 해 주지 않으니까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일단 핵을 가져야겠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언젠가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할 때 북한이 받아낼 수 있는 보상규모를 키우기 위해서 핵카드를 강화해야 되겠다는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한 것입니다.

이 : 북한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관님께서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진보세력 내의 서로 다른 입장으로 촉발된 논쟁을 소모적이라고 하시면서 세습 이후 북한과 어떻게 관계 설정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변화를 위해서 계속적으로 북한의 봉건주의적 방식을 비판하는 것이 우리의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정 : 세습 이후에 북한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북한은 이미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넘어올 때에 김일성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아니면 북한의 지도자가 될 수 없도록 주민들에게 사상교육을 시켜왔습니다. 마치 조선조시대에 이씨(李氏)만 임금이 될 수 있도록 한 것과 같습니다. 이씨가 임금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난데없이 촌수가 멀어도 선조나 고종처럼 입양을 시켜서라도 그렇게 한 것처럼, 북한은 소위 백두 혈통, 만경대 혈통이 아니면 지도자가 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 삼남이 후계자가 되었지만, 김정일의 삼형제 중에서 후계자를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정일이 처음 세습할 때는 어려웠습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론을 세워놓았는데, 그 이론 때문에 지금 김정은은 자동적으로 인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장성택이나 김영춘이나 리영호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외부의 공작에 의해서 설사 누가 개입하더라도 연착륙하기가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소용없습니다. 27세가 아니라 17세라도 북에서 내세우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의 정치문화입니다. 그걸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 일정한 나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은 의미가 없습니다. 세종이 몇 살에 왕이 되었습니까? 이십이 안 되어서 왕이 됐습니다. 영조도 18살에 왕이 됐습니다. 다 훈구대신이 보필해서 훌륭한 선군을 만들어 놓습니다. 북한의 정치문화가 이와 비슷합니다. 이것은 북한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현실입니다.

   ⓒ더보이스 김형호

이 : 한국의 대형 교회들이 주로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긴 하지만 대북지원과 관련해서는 중요한 역할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서독과 동복에서도 통일과정에서 교회의 역할들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남북문제나 통일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면 좋겠는지요?

정 : 교회에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북한의 선교를 목적으로 대북지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100년에 서구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했던 방식대로 하면 좋겠습니다. 성급하게 선교활동부터 시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에 와서 의료와 교육 사업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외국이었지만 조선 사람들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자기들 위치를 확립해 놓고 민심을 얻은 후에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하는 일들을 병행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독인들은 너무 성급합니다. 북한에 성경을 두고 오고, 누군가 그것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일들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무모한 행동은 북한 사람들을 죽이는 행동입니다. 먼저 최선을 다해서 북한 사람들이 필요한 부분을 섬기는 일을 통해서 그들이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과시적이고 업적을 중시하는 행동들은 오히려 북한선교에 장애가 됩니다. 장기간 북한에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전파하는 방법이면서 북한의 민심을 남한에 넘어오게 하는 효과도 유발합니다. 통일의 구심력은 민심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통일의 구심력이 커져야 통일의 원심력을 압도하고 통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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