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 사람을 먹어치운다”
토마스 모어가 살아있다면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었을까?
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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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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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란 무엇인가? 그 어원을 보면 ‘u(no)+topia(place)’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토마스 모어는 산업혁명이 태동하는 시점에 영국에서 일어난 변화, 특히 인클로저 운동으로 수많은 농민들이 쫓겨나 빈민으로 몰락하는 상황을 보면서 영국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 <유토피아>를 썼다. 유토피아는 그의 상상력을 통해서 만들어진 단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토피아는 실제로는 모어 자신이 원하는 영국의 이상적인 국가를 상정한 것이며, 책의 곳곳에는 당시의 영국을 풍자한 흔적들이 있다. 토마스 모어의 삶 자체를 놓고 본다면 그는 보수적인 인물로 당시 유럽을 뒤흔들었던 종교개혁도 거부했다. 영국 내에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대법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에는 헨리 8세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아서 처형을 당하게 되는데, 이 역시 토마스 모어가 이혼을 인정하지 않던 가톨릭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천주교 신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토마스 모어라는 세례명을 갖게 된 것도 그의 순교적인 삶을 본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유토피아에서 철저히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입장을 피력했는데, 실제로는 영국이 사유재산제를 철폐하고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가 꿈꾼 유토피아는 그야말로 하나의 가정이나 상상에 머물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산업혁명이라는 엄청난 변화 속에서 가난한 농민들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던 모어가 당시 영국 사회를 고발하고, 제도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했던 것은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모어는 인클로저 운동으로 공유지에서 농사를 짓던 많은 농민들이 빈민이나 거지로 전락해 극단적인 생활고에 시달리던 불행한 시대에 분노했다. 인클로저 운동은 곡물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양모생산을 위해 귀족들이 공유지를 사유화해 그 땅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을 몰아내고 경지를 목장으로 전환한 운동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린 농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리면서 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했으며, 값싼 저임금으로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당시 영국의 이런 상황을 보면서 모어는 "양이 사람을 먹어치운다"고 비판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날카롭게 지적한 표현으로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다. 후에 모어의 비판은 마르크스에 의해서 자본의 탄생을 해석하는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신앙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이었던 모어가 자신이 상상했던 유토피아에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사상이나 생각을 기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답답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무기력한 지식인이 보다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해 보는 것으로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는지 추측해 본다.
일찍이 유럽인들은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들이 아메리카대륙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수 없는 주요한 근거들 중 하나로 식인 풍습을 든 바 있다. 원주민들이 자연사한 사람들만을 먹었는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람들을 죽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먹기 위해 사람들을 죽였을지라도 원주민들은 먹을 만큼의 사람들만을 죽였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먹을 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을 죽였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거의 1억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전쟁의 희생자가 되었다. 유럽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미개화된 문명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인간의 탐심과 욕망으로 황폐화된 자연과 생명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구제역과 AI조류독감으로 시작된 가축의 재앙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340만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 되었으며, 조류독감으로 인한 닭의 살처분도 550만 마리에 이른다. 산업혁명 당시 양들은 인간보다 대접받는 대상이었고, 양에게 생활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한 환경 속에서 생명을 유지해야 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인간들은 이제 자신들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만한 가축들을 전염병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잔인하게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토마스 모어가 살아서 이런 상황을 보았다면 이 세태를 어떻게 풍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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