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는 신의 은총이 제공한 선물

카리스마의 변화를 보여주는 존 포츠의 <카리스마의 역사>

코아스포라 승인 2011.05.25 16:45 의견 0

   카리스마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존 포츠의 <카리스마의 역사> ⓒ더숲
『카리스마의 역사』(존 포츠 지음, 이현주 옮김, 도서출판 더숲, 2010)는 지난 2,000년 동안 ‘카리스마’라는 말의 의미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카리스마라는 말을 사용한 역사는 저자의 요약처럼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카리스마’라는 말은 1세기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생겨났고, 3세기 말 무렵에는 교회 내에서 종교적인 개념으로서의 중요성이 잠시 감소되었다. 여러 세기 동안 카리스마라는 말은 간혹 모습을 보였을 뿐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다가 20세기 초에 막스 베버(Max Weber)의 사회학에서 다시 창조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말은 미디어와 학계, 대중들이 나누는 대화 등 현대의 서양문화 전반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15쪽).

이 책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카리스마’라는 말은 종교적 개념(사도 바울)으로부터 사회적 개념(막스 베버)으로, 그리고 다시 문화적 개념(현대 문화)으로 변화하였다. 바울이 규정한 카리스마의 개념은 하나님이 교회의 신자들 모두에게 다양한 형태로 나누어 주시는 특별한 재능으로서, 그 뜻 안에는 베버가 카리스마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한 리더십이나 권위, 그리고 한 사람에 의한 지배와 같은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한편 베버가 규정한 카리스마의 개념은 주로 종교 및 정치 지도자들과 관련된 것으로서, 카리스마를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포함한 특정 개인들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는 현대 문화의 카리스마 개념 이해와는 또 다르다. 다만 카리스마의 현대적 개념은 특정 개인을 두드러지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는 타고난 자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개념은 대체로 베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18쪽). 이 책의 요지를 바울과 베버에 초점을 맞추어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사도 바울의 카리스마

바울이 카리스마라는 말을 사용하기 전에 그리스 문화에서 이 말의 어근인 ‘카리스’에 결부되어 있었던 기본적인 의미는 크게 세 가지였는데, 곧 개인적인 아름다움이나 매력이라는 의미, 호의나 사랑이라는 의미, 그리고 누군가의 선의로 제공된 선물이나 이득이라는 의미였다(40쪽). 그런데 그리스 철학자들은 은혜를 베푸는 행위와 그에 대한 감사라는 상호존중의 체계를 인정했는데, 카리스라는 말의 의미도 이와 같이 상호적인 사회적 규약(은혜-감사) 하에서 이해되었다(42쪽).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은총을 무상으로 준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카리스의 의미를 바꾸어놓았다(82쪽).

“사도 바울의 신학에서 선행은 호의에 답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자극받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은 그 호의를 받는 사람에게 의무감을 안겨 준다는 기대감 속에 선물을 주지 않는다. (중략: 인용자)

선행이 널리 행해짐으로써 사도 바울은 당시 사회에 지배적이었던 상호주의체계를 무너뜨리면서 신학적, 사회적 차원에서 은총의 복음을 매력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이제 신의 은총은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차별을 없애는 수단’이 되었다.”(84-85쪽).

한편 신의 은총이라는 개념은 구약 성서에서 사용된 어근인 ‘hnn(호의, 은총)’에 의해 이미 유대 문화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리스어판 구약성서인 70인경에 나오는 카리스는 호의나 친절을 베푸는 행위 혹은 하나님이나 우월한 사람이 총애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행위 등을 의미했다(44쪽). 그런데 카리스마와 관련하여 그리스 철학과 유대-기독교 전통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

“헹겔이 보기에, 고대 예언자들에서 시작되어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까지 포함하는 유대계의 전통에는 하나님이 예언자들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하고 사람들은 그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교로 귀의하게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 과정은 신이 부여한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그리스 철학과는 달랐다. 카리스마의 부여와 신의 부르심이라는 과정에는 신이 부여한 자질이 개개인에게 나누어지고, 그 개개인은 신이 주는 선물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신념이 담겨 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러한 전통의 계승자였다. 이 신념은 바울이 은사를 받기 위해 스스로를 열어놓은 사람들에게 부여된, 신의 은총의 선물로서의 카리스마를 창안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구성요소였다.”(57-58쪽).

바울은 ‘카리스마’를 하나님의 은총이 담긴 재능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한다(63쪽). “사도 바울은 ‘카리스마’라는 말을 이용하여 신의 은총으로 얻게 되는 영적, 초자연적 능력을 포함한 다양한 ‘재능’을 나타냈다.”(63쪽). 그리스어 ‘카리스마’는 은총을 뜻하는 ‘카리스’에 어떤 행위의 결과를 가리키는 접미사 ‘마’를 더한 것으로서, ‘은총을 선사한 결과’ 혹은 ‘은총의 행위’라는 의미를 갖는데, 이런 측면에서 바울은 카리스마를 ‘신의 은총의 선물’로 기술한다.

“사도 바울에게 카리스마는 신의 은총이 제공한 선물이다. 카리스마는 구원 자체의 선물을 의미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초기 그리스도교에게 부여한 구체적인 신성한 재능을 의미하기도 한다. 카리스마와 카리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카리스마는 신의 카리스, 즉 은총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교회 내에서 다양한 재능을 발생시키며, 사도 바울은 그 재능들을 일일이 열거했다. 그는 이러한 다양한 자질들을 가리키기 위해 복수형인 카리스마타를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방언이나 치료와 같은 기적적인 능력이 포함되었다.”(87쪽).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를 언급하면서 ‘프뉴마티카’(신령한 것들)라는 말을 ‘카리스마타’(신의 은총의 선물)로 바꾼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의도가 있다.

“바울은 영적인 능력을 계속해서 강조했지만, 이러한 능력을 성령의 영역, 즉 그리스도교의 틀 안에 엄격히 자리매김했다. 그는 카리스마타라는 말을 정교히 다듬으면서 이러한 재능이 모두에게 공유된다는, 다시 말하면 신자들 모두에게 이용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중략: 인용자)

긴 단락 전체에서 바울은 이렇게 서로 다른 카리스마타를 발생시키는 성령이 하나임을 계속해서 강조했으며,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부의 개인들에게 스스로를 하나의 성령에 의해 유지되는 한몸의 일부로 간주하도록 요구했다.”(94-95쪽).

바울이 은사의 순위를 매긴 기준은 공동체의 이익이다(99쪽). 바울의 카리스마는 교회를 발전시키는 목적에 부합되었고, 따라서 바울에게 ‘카리스마의 부여’는 공동체 내에서의 봉사 및 공동체를 위한 봉사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113-114쪽). 그리고 바울이 기술한 은사들은 방언과 통역의 경우처럼 서로 맞물리는 방식으로 회중 전체에 분배된다(100쪽). 또한 바울의 은사론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의 모두가 카리스마에 접근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100쪽). 그리고 리더십이 카리스마 중의 하나로 열거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한데, 바울이 강조한 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공동체였다(100쪽).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갖게 될 카리스마에 만족하라고 충고한다(100쪽). 바울이 교회를 서로 다른 지체로 이루어진 몸으로 비유한 것은 모든 은사가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100-101쪽).

“코린트의 문제들은 불화를 일으키는 프뉴마티카로 인해 발생했다.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했던 사람들은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바울의 카리스마도 영적이고 초자연적이었다. 그러나 은사로서 카리스마의 목적은 통일을 이루고 공동체를 강화하여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101쪽).

또한 바울은 카리스마를 주시는 분은 성령이심을 분명히 한다. 그런데 바울의 카리스마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인 의인(義認)과 구원과 영생을 포함한다. 한편 바울의 카리스마에 포함된 공동체적 개념은 급진성을 띠고 있다.

“바울이 코린트인과 로마인들에게 전한 훈계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의 정신적 통일을 증진시켰고, 이는 여러 면에서 헬레니즘 사회의 계층적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해리슨이 보기에,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각자 ‘독특한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공동체의 번영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로마제국의 지배적인 사회정치사상을 뒤집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의 카리스마가 가진 공동체적 특징으로 가능해진 이러한 정신적 민주주의는 교회가 제도적인 틀을 갖추자 2세기 들어 교회에 어려움을 안겼다.”(108-109쪽).

그리스-로마 사회에 존재하던 인종, 계급, 성별의 차별이 바울의 공동체에서는 극복되었는데, 카리스마타는 이러한 평등화의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112쪽). 한편 카리스마와 권위 사이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일부 학자들은 카리스마적 권위라는 베버의 개념을 고린도전서와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카리스마와 연결해 보려고 애썼지만 바울의 서신에서 이런 입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없다(109쪽). 바울이 자세히 기술한 다양한 카리스마 중에서 리더십이나 권위와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109쪽). 바울의 은사론은 권위의 중심을 소수에서 전체로 옮겨놓았다(110쪽).

“바울이 고린트의 정신적 엘리트층을 비난했던 것은 그들이 방언 능력을 근거로 스스로 권위 있고 우월하다고 여기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중략: 인용자) 권위는 공동체 전체에 의해 행사되어야 하며, 사도든 방언을 말하는 자든 카리스마를 가진 이에게 부여되지 않는다.”(110쪽).

로버트 뱅크스에 의하면, 카리스마를 나누어주는 성령이 민주적이기는 하지만 평등주의적이지는 않았다(111쪽).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카리스마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민주적이지만, 특정 은사가 다른 은사보다 높게 평가된다는 점에서는 평등주의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111쪽). 그러나 바울은 신자들에게 더 높은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유했는데, 이런 은사는 분명히 손에 닿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111쪽). 더 높은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은사였다.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

베버는 관료화를 합리화와 연결시켰다. 베버는 역사적으로 문명이 효율성을 합리화하여 생산수단과 체제를 다듬으려 했는데, 더욱 효율적인 방법은 예상하기가 쉽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불가피하게 관료주의적으로 변했다고 보았다(246쪽). 베버에게 합리화란 일상화, 탈인간화, 고정된 사회 구조의 발달, 개인 자유의 상실 등을 의미했는데, 베버는 이 합리화의 철창(iron cage)에서 비합리적이고 카리스마적이고 영감을 주는 것이 쇠퇴하고 있다고 탄식했다(247쪽). 이런 상황에서 베버의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영웅적 인물로서, 드물게 나타나지만 동료들을 해방시켜 줄 힘을 부여받은 사람이었다(249쪽). 베버는 카리스마와 합리화를 영원한 라이벌로 경쟁시켰다(249쪽). 베버의 카리스마는 특이한 지도자들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에, 그 경쟁은 영웅 대 관료, 더 정확히 말하면 카리스마 있는 영웅 대 관료제의 경쟁이 되었다(249쪽).

“베버는 합리화가 생산성 향상을 대규모로 발생시켰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합리화가 불가피하고, 그 결과로서 관료제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한 베버는 말년에 비관주의에 무릎을 꿇었다. 또한 그는 근대 관료제의 극복할 수 없는 힘 때문에 카리스마가 관료제 조직에서 하나의 기능으로 격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의 형태로 합리화에 대한 대항 세력을 제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251쪽).

베버는 놀라운 지적 혁신자라기보다는 개념과 지식 체계를 종합하는 데 탁월한 인물이었는데, 카리스마라는 개념 역시 그러했다(151쪽).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근대 세계에 반하는 개념을 고안하기 위해 고대의 종교의 돌아가서 카리스마라는 말의 의미를 재창조해낸 것이다(151-152쪽). 베버는 『경제와 사회』에서 카리스마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카리스마’라는 말은 한 개인의 특징에 적용될 것이다. 그는 그 특징 때문에 초자연적, 초인간적, 또는 적어도 특별히 예외적인 능력을 부여받은 뛰어난 사람으로 간주된다.”(154쪽).

베버는 정당한 지배의 세 가지 유형, 곧 권력의 순수한 세 가지 유형을 합법적 지배, 전통적 지배, 카리스마적 지배로 제시한다(255쪽). 여기에서 마지막의 카리스마적 지배는 다른 두 유형의 지배와 대비되는데, “예외적인 신성함과 영웅적 행위 또는 모범적 성격의 한 개인과 그 사람이 규정하거나 밝힌 규범적인 양식이나 질서에 대한 헌신이 밑받침되는”(255쪽) 지배이다.

“베버는 카리스마적 권위에 대한 정의를 상술하면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의 뛰어난 능력이 신에게서 생겨난 것으로 간주되며 그 능력을 기초로 그 해당자는 ‘지도자’로 대접받는다고 주장했다. 베버의 ‘카리스마’ 재창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영적, 초자연적 능력을 연상시키는 그 말을 초기 그리스도교로부터 전용했지만, 바울의 카리스마에서 강조되었던 공동체 의식을 개별 지도자에 대한 강조로 대체했다. 베버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부여된 공동의 축복이라는 바울의 카리스마 개념을 무시함으로써, 그 말을 특정한 지배 형식이자 추종자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뛰어난 지도자의 능력으로 다시 규정했다. 또한 바울의 카리스마는 그가 살던 시대의 작고 밀착된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관련이 있었던 데 반해, 베버는 문화와 역사를 통틀어 명백히 나타나는 ‘뛰어난’ 능력을 표현하기 위해 카리스마를 일반화했다.”(258쪽).

이와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의 등장은 그것이 기존의 권위와 전통을 쓸어 없앤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259쪽). 곧 카리스마적 권위는 과거를 거부한다(259쪽). 그리고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관료제와 모든 합리적인 지배형식에 반대된다(259쪽). 그것은 모든 규칙과 맞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비합리적이다(259쪽). 베버는 자신이 제시한 ‘순수한’ 지배 유형들은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는데, 그 유형들은 역사적 사건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259쪽). 순수한 형태의 카리스마적 권위가 영속성을 얻으려면 일종의 타협이 불가피하다(260쪽). 곧 카리스마는 전통화되거나 합리화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카리스마의 일상화이다(260쪽). 예를 들어 카리스마의 세습은 개인의 카리스마를 전통적 지배의 형식으로 일상화한 것이다(260-261쪽). 베버는 비록 가장 세속적이고 고도로 질서 있는 사회이더라도 카리스마가 지속된다는 점을 지적했다(268쪽). “현대 민주주의의 거대한 관료주의적 장치는 여전히 당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능력을 강조할 수 있다.”(268쪽).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 연설에서 자신의 카리스마적 지배 이론을 ‘계시나 영웅적 행위 또는 개별 지도자의 자질’에 대한 개개인의 헌신과 신뢰라고 짧게 요약했고(269쪽), <직업으로서의 학문> 연설에서 당대의 합리화된 환경에서조차 명백히 나타났던 고대의 ‘예언자적 정신’에 상응하는 고동치는 힘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270쪽).

“베버는 카리스마를 보편적인 권위의 유형으로 가정함에 따라 현대 서양사회를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비판적인 관점으로 바라봤다. 먼저, 그는 현대 서양사회가 그 기술적, 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덜 세련된 사회에 비해 영적 수준이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실을 알리는 한 가지 지표가 바로 활기 있는 영적 세력을 대표하는 카리스마가 관료화되거나 길들여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로, 베버는 당시의 사회구성체가 모두 합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비합리적인 세력이 여전히 살아남았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철창’은 카리스마와 같은 힘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정도로 억압적이지는 않았다. 베버는 카리스마적 권위가 현대의 관료주의적 정치세계에서도 기능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가 보기에 고도로 합리화된 사회는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권위와 비합리적, 즉 카리스마적 권위가 융합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270-271쪽).

이 책의 장점들과 단점

이 책의 장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는 카리스마라는 말의 ‘의미론적 변동’(semantic seesaw)을 탐구하기 위해 주요한 방법론으로, 각각의 다른 상황(context)에서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하는 ‘맥락주의’(contextualization)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람직한 태도이다. 저자에 의하면, 맥락주의는 어떤 단어가 서로 다른 역사적 시기들을 거쳐 가며 겪은 변화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방법론으로서(28쪽), 세상이 변하면 의미도 변하는 것이다(29쪽). 카리스마라는 말은 최초에 사용된 상황과 다른 환경에서 창조되고 또 재창조되어 다른 개념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29쪽).

저자는 데이비드 스파다포라의 견해를 소개하는데, 아주 적절한 인용이다. “만약 의미가 환경 속에 존재한다면, 어떤 말과 그 말뜻의 역사를 그 특이한 환경에 몰입시켜야 ‘시대착오적인 잘못된 해석’을 피할 수 있다.”(29쪽). 이 카리스마라는 말의 역사는 바울과 베버에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데, 이 두 사람은 그들 각자의 당대 환경이 만들어낸 사람들로서, 그들의 견해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결정된 지식 구조 내에서 발생한 것이다(33쪽).

둘째, 저자는 신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성서 이해는 탁월하다. 대표적으로 한 가지만 들어보면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의 은사 이해에 대한 비교이다.

“(이사야 11:1-2을 인용한 후에: 인용자) 지혜, 총명, 모략, 재능, 지식, 하나님에 대한 경외 등 이렇게 부여된 여섯 가지 성령은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설명된 카리스마의 선례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여섯 가지의 영적인 종류 중 어느 것도 사도 바울이 카리스마의 변형물로 설명한 다양한 은사에 부합되지 않는다.

또한 이사야서에서는 한 사람이 성령으로부터 여러 가지의 선물을 받은 것으로 설명되었지만,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는 여러 유형의 카리스마가 회중 구석구석에 나뉘어 개인마다 다른 선물을 받게 된다. (중략: 인용자)

(출애굽기 31:1-6을 인용한 후에: 인용자) 기술자들이 성령에 의해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신에 의해 영감을 받은 지도자들과 예언자들의 전통을 보완해주며, 그리스도교 집단의 평범한 일원들에게 은사를 부여한 전례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사도 바울의 서신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중략: 인용자)

구약성서에 지적된 대로,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등장하는 카리스마라는 개념은 성령의 은총으로부터 생겨났다.”(47-49쪽).

이 책의 단점은 거의 찾을 수 없는데, 굳이 한 가지를 지적한다면 다음과 같다. 저자는 몬타누스파와 바울을 연관시키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저자에 의하면, 프리지아의 몬타누스와 프리스카와 막시밀라라는 세 사람은 무아경의 상태에서 프리지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예언했는데, 몬타누스파는 그들이 직접 성령을 부여받았고 그들을 무시하는 짓은 불경스러운 행동이라고 주장했고, 이후 몬타누스파는 성령을 받은 예언자의 부활 운동이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149쪽). 그런데 저자는 몬타누스파가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영감을 강조한 점에서 제도화된 교회보다 바울이 설명한 카리스마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었다고 주장한다(149쪽). 이어서 저자는 몬타누스파는 주교나 교회로부터가 아니라 보혜사 성령으로부터 직접 영감을 받는다고 주장한 점을 거론하며 성령과 은사를 강조한 점은 바울의 가르침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49쪽).

그러나 이와 같은 저자의 주장에는 오류가 있다. 저자는 몬타누스파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몬타누스파는 성령을 받은 예언자의 부활 운동이라고 주장하지만, 프리지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하는 예언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예언은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몬타누스파는 그 예언을 한 세 사람이 직접 성령을 부여받았고 그들을 무시하는 짓은 불경스러운 행동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을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세 사람에게 권위와 권력이 집중되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곧 권위를 소수로부터 공동체 전체로 이동시킨 바울의 은사론을 고려할 때, 바울과 몬타누스파는 관계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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