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의 법적 근거로 성장한 “보호의무” 국제규범
2011년 3월 17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공격이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면서, 국제연합의 회원국이 리비아에서 공격당할 위험에 처한 민간인 거주 지역과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상군을 제외하고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결의안 1973을 통과시켰다. 상기 결의안은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인도적 개입으로 이어져 총 18개국(14개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 스웨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 요르단)이 리비아에서 직접적 군사행동, 해상봉쇄, 난민구호에 관여하고 있다.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973은 “보호의무(responsibility to protect)”의 위반이 국제사회의 군사적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였다. 오랜 관행과 국제법이 보장하는 주권평등과 내정불간섭 원칙 때문에 국제사회는 주권국가의 대규모 인권유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개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보호의무”는 주권국에게 그 국민을 보호할 일차적 의무를 부여하고, 만약 주권국이 “보호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에게 이차적 “보호의무”를 부여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인도적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다.
“보호의무”는 무엇인가?
“보호의무”는 2001년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여 2005년 세계정상의 회의결과문(Outcome Document)을 통하여 성문화된 국제규범으로 성장하였다. 2000년 천년정상회의에서 합의되었던 사항의 이행정도를 점검하기 위하여 2005년 다시 모인 세계정상은 “개별 회원국이 개별회원국의 사람(its populations)을 인종학살(genocide), 전쟁범죄(war crimes), 인종청소(ethnic cleansing),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가진다”라고 합의하였다. 또한, 회원국이 “보호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못할 경우, 국제사회가 이차적 “보호의무”를 진다고 합의하였다. 더 나아가,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가 헌장 7장에 의거하여 군사적 조치를 포함하는 활동할 수 있다는 문항에도 합의했다.
2005년 세계정상의 회의결과문에 나타난 “보호의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보호의무”의 대상은 회원국의 사람들(populations)이다. 회원국의 국민(citizens)이 보호할 대상이라는 초기 논의와 달리 회원국의 사람들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보호대상이 확대되었다. 둘째, “보호의무”의 주체는 일차적으로 국제연합의 회원국이며, 국제사회가 이차적 주체이다. 일차적 의무를 지고 있는 회원국이 자국인을 보호하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가 인도적 개입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셋째,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인도적 개입은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넷째, “보호의무”가 작동되어야만 하는 위협요인은 인종학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반인도적 범죄이다. 즉, 의도적으로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범죄만을 규제 대상으로 한다.
2005년 세계정상회의 이후 "보호의무"는 자국내 국민을 조직적으로 핍박하는 정권에게 인권을 보호하라는 권고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수단 다르푸르 사태, 2007년 케냐 대통령 선거 이후 발생한 종족 갈등, 2008년 태풍 피해 이후 국제사회의 구호활동을 차단하는 버마 정부의 행동에 대하여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해당 회원국에게 "보호의무"를 상기하면서 적극적 문제해결을 주문하였다.
북한의 인권문제와 “보호의무”
수년전부터 국제비정부기구는 북한에서 조직적으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북한 정권의 “보호의무” 위반을 꾸준히 언급하고 있다.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에 관한 실태를 조사하여, 국제사회에 알리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 국가는 국제기구에서 북한 정권에 의한 인권유린을 “보호의무”와 연결하여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호의무”를 근거로 북한의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가? 현재 상황을 검토하면, 북한 정권이 인종학살과 반인도적 범죄를 자행한다는 이유로 국제사회가 “보호의무”를 언급할 개연성이 있다. 반인도적 범죄는 (당국에 의하여 자행되는) 광범위하며 조직적인 살해, 고문, 성폭행, 종교적 또는 정치적 박해를 포함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추산한 통계에 따르면 북한 수용소에 수감된 정치범이 20만명이다. 이 가운데 개인 비리가 아니라 북한 체제에 반대하다가 수감된 인사가 조직적으로 탄압을 받는다면, 이는 반인도적 범죄이다. 또한 197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북한 주민을 핵심계층, 적대계층, 동요계층으로 분류하여 사회적 활동의 영역을 제한하는 행위도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된다고 보여진다.
인종학살은 특정 민족 또는 종교 집단을 파괴할 목적으로 자행되는 살해,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심한 위해를 가하는 행위, 의도적으로 생활 조건에 위해를 가하여 특정 민족 또는 종교 집단을 파멸시키는 행위,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 다른 집단으로 아동을 강제로 입양시키는 행위 등을 포함한다. 북한에서 자행되는 기독교인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은 인종학살에 해당될 수 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약 11%가 기독교인이라고 추정되며, 수용소에 수감된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혹독한 강제 노역과 강제 낙태를 당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북한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에 관한 증거가 충분하게 마련된다면, 국제사회는 북한 당국에게 “보호의무” 위반을 지적하여 개입할 수 있다.
반면, “보호의무”에서 지목하는 위협요인인 전쟁범죄와 인종청소는 북한 정권에게 적용하기 어렵다. 우선, 인종청소는 “특정 지역으로부터 소수 민족 또는 종교적 집단에 속한 민간인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강제로 제거”하는 행위이다. 북한에는 소수 민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수 민족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행위가 원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북한 당국이 기독교인을 박해하지만, 기독교인이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에서 인종청소는 원천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전쟁범죄는 전투행위에 적용되는 전쟁법을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행위이다. 점령지에서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강제노역장에 집단 수용하는 행위, 전쟁포로를 살해하거나 비인도적으로 대우하는 행위, 전쟁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서 민간인 거주 지역을 파괴하는 행위 등이 구체적인 예로 거론될 수 있다. 북한이 현재 전투행위를 본격적으로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조직적인 전쟁범죄에 관여할 가능성이 약하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발생한 한국군 포로의 미송환과 박해, 2010년 연평포격 당시 민간인 거주지역에 대한 포격 등이 전쟁범죄에 해당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북한 당국의 조직적이며 의도적인 개입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종합하면, 북한 정권이 정치범, 적대계층, 기독교인을 조직적으로 탄압한다는 증거가 확보된다면, 국제사회는 북한 정권이 “보호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시정을 촉구할 수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 정권의 “보호의무” 위반을 지적하며 인도적 개입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수준에 이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된다. 군사적 조치로 인하여 네 가지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개연성이 높아야 하고, 평화적 조치가 효과를 거둘 수 없을 때 최후 수단으로 군사적 조치가 사용되어야 하며,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만 군사적 개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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