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교론

코아스포라 승인 2011.05.18 13:54 의견 0

하나님의 눈으로 북한바라보기

북한선교의 WHY, WHO, HOW

 

 

 

 

북한선교론

 

 

 

 

 

 

 

 

 

오 성 훈 著

 

 

 

 

 

 

 

 

 

북한과 열방을 위한 중보기도네트웍(PN4N)

The Prayer Network for North Korea & the Nations

 

 

 

 

 

 

 

 

 

 

 

 

 

 

 

 

 

 

제 1 장

한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

 

 

Ⅰ. 우리민족의 기원과 명칭

 

1. 민족의 개념

 

민족이란 혈연(血緣), 지연(地緣)과 같은 자연적 공통성과 언어, 전통, 풍습, 종교와 같은 문화적 공통성을 지니고 하나의 정신과 얼을 기초로 한 사회적 집단이다. 현대에 와서는 국가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고, 경제 공동체로서의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민족은 생물학적이고 자연사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민족 자신에 의한 자각, 또는 집단에 의한 인식(민족의식)을 계기로 형성되는 사회학적 개념이다.

 

2. 우리민족의 기원

 

우리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도표로 정리할 수 있다.

몽골인종

옛시베리아족

우랄어족

터키족

몽골족

코카서스인종

새시베리아족

알타이어족

퉁구스족

니그로인종

한(韓)족

알타이어족의 여러 갈래 중에서 한민족은 중국동부해안지대와 만주서남부, 그리고 한반도에 둥지를 틀었다.

 

3. 민족국가의 형성과정

 

성읍국가시대

고조선 B.C. 2333년 단군왕검

 

연맹왕국시대

부여-송화강유역, 고구려-압록강유역, 옥저․동예-동해안

마한, 진한, 변한: 한강 이남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남북조시대

발해, 통일신라

 

후삼국시대

후고구려(궁예), 후백제(견훤), 신라

 

고려(高麗)

후삼국 통일, 발해유민 포섭-주변의 종족과 구별되면서 서로간의 의사소통에 장애가 없는 한족의 여러 갈래를 하나의 체제와 영역 안에 두게 된 것은 민족국가의 형성에 결정적인 계기가 됨

 

조선(朝鮮)

우리말과 일치되는 문자체계인 훈민정음이 창제됨으로써 하나의 민족으로써의 제반요건이 일단 완비되는 시기

 

대한제국(大韓帝國)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격화되는 외세의 물결은 근대적 민족의식의 형성을 크게 자극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의한 가혹한 수탈과 억압, 동화정책 등에 대항하면서 한민족의 민족의식은 더욱 강해지고, 민족공동운명체로서의 동포 의식이 보편화되기 시작

 

대한민국

VS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해방과 더불어 북위38도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한 주둔, 우리민족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

좌우의 이념대립이 증폭되면서 남한에는 미군정을 배경으로 이승만 정권이, 북한에는 소련군을 등에 업은 김일성 정권이 각각 들어섬

 

민족국가의 형성과정의 특징은 외부로부터의 침략 등 위기 상황이 다른 민족과 구별된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4. 우리민족의 명칭

 

우리 민족은 동이(東夷), 동국(東國), 청구(靑丘), 배달, 조선(朝鮮), 한(韓) 등 다양하게 불리웠다. 그런데 현대사에서 한반도가 세계적인 냉전시대 이데올로기 대립의 대리전을 치르면서 남과 북이 각각 한국과 조선으로 다른 명칭을 쓰게 되었다. 김병로 박사는 북한이 우리를 한(韓)민족이라고 보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韓)민족의 뿌리가 부족국가 형성이전의 농경민족이었던 마한, 진한, 변한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진한의 한 부족인 사로국이 신라로 발전하여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신라→고려→조선→대한민국으로 발전한 것으로 한민족의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이다.

반면 조선민족은 유목민족인 부여족과 그 후신인 고구려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더군다나 1994년 단군릉을 거대하게 조성한 이후에는 단군을 역사적 실존인물로 강조하며 단군의 넷째 아들이 부여족을 형성했다고 주장함으로써 단군→부여→고구려→발해→고려→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민족의 기원을 부여족과 고구려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한(韓)민족과 관련된 남한, 북한이라는 호칭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부르는 명칭에서의 차이는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조선’이나 ‘한’은 동일하게 “밝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북한에서 가장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남한의 신문이 한겨레신문이 아니라 조선일보라는 사실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볼 수 있다.

김상일이 「기독교사상」 1987년 1월호에 기고한 “한민족의 기원과 미래”라는 글을 보면 ‘한’과 ‘조선’의 의미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

 

‘조선’(朝鮮)과 ‘한’(韓)은 모두 우리 역사의 영욕을 함께 한 나라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Morning Calm)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차라리 Sunshine, Sun Brightness로 번역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우리는 해뜨는 동쪽을 상부(上部)라 하고 해지는 서쪽을 하부(下部)라고 했다. 중국이나 서양이 건물을 지을 때 집 방향을 고려하기는 해도 우리같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동남향 집을 유별나게 고려한다. 그것은 햇볕을 많이 받는 방향이 동남향이기 때문이다. 신라 고분이나 백제 고분은 머리 방향을 상향 혹은 동남향에 둔다. 이 죽은 자의 머리 방향은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즉 중국의 한족은 서쪽으로, 동이족은 동쪽을 향하게 했다.

이렇게 동남의 해 있는 곳을 지향한 우리 민족은 ‘밝고 환한’ 것을 정신적 이상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얼은 ‘밝’과 ‘한’에서 찾아져야 한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는 ‘밝’ 사상이라 하여 ‘밝’이 한자음으로 전음된 ‘불함’(不咸)을 내세워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을 전개한 바 있다.…

한자가 들어오면서부터 ‘밝’이 그 의미만 살리고 음은 무시되어 ‘朝鮮’이 되었다. 그러나 두 말은 모두 Sunshine 혹은 Brightness 등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군은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했다. 이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은 고조선이 위만에 의해 나라를 찬탈 당할 때까지 계속되어졌다. 고조선의 마지막 임금 준(準)이 조선을 ‘한’(韓)으로 바꾸고 스스로를 한왕(韓王)이라 해고, 민족을 한민족(韓民族) 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최초의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풍지박산이 나는 위기에 처하여 민족적인 정체성을 밝히려 할 때 나온 것이 바로 ‘한’이다.

 

 

Ⅱ. 민족교회론

 

1. 민족과 기독교의 관계

 

기독교는 모든 민족 혹은 종족의 개념을 초월한 우주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선교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발생한다. 기독교 역사상 선교 초기에 복음은 피선교지의 고유한 민족정신에 의해 거부되고, 반대되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복음도 그 내용과 형식에서 전파하는 사람들의 문화적인 옷을 입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복음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를 배격하는 움직임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복음이 성공적으로 그 민족에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문화 속으로 본질적으로 파묻혀야만 한다. 이것은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명제에서 잘 나타난다. 이 과정은 선교학적으로 “상황화”(Contextualiztion)와 “토착화” (Indigenization)란 용어로 설명되고 있다.

 

2. 민족교회의 정의

 

민족교회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민족 내부의 화합과 자기 발전을 추구하고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대해 주체적으로 대처하여 자기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일하는 교회를 말한다. 단, 민족교회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이며 제한적 가치를 가진다. 이것은 민족교회가 인류전체의 평화와 공존을 지향할 때, 그리고 그 민족이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해결해야만할 고난의 상황이 있을 때에만 성립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일본교회나 독일국가교회가 타민족을 침략하고 수탈하는 전쟁을 정당화하고 그 전쟁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갖는 등의 신앙행위는 민족교회의 개념으로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 된다. 또한 국가 혹은 민족이 부강하고, 민족담론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어떤 문제가 없을 경우에는 민족교회라는 개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우리민족의 경우에는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해결해야만 할 민족적 생존의 문제가 있다. 바로 분단된 민족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이 분단의 상황 때문에 우리민족은 이산가족의 고통, 국가보안을 빌미로 한 인권유린, 국방비 과다지출 등의 어려움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민족교회로써의 역할과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3.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하나님께서는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기 위해(창 12:3)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일으키셨다. 이스라엘은 구속사(Salvation History)의 중심으로서 그리스도가 그 혈통 가운데 나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민족이 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을 특권으로 오해했으며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이방인들을 구원할 책임을 맡은 그들이 심지어 이방인을 지옥의 땔감으로까지 폄하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나누지 않았다.

요나서는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요나는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싫어하는 이스라엘의 마음을 자신의 행동인양 풍유하여 제3자의 관점에서 보게 함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요나서를 썼다. 이런 요나,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육신 하셨을 때, 그들의 대부분은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총독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요구하면서 그 피 값을 자신들과 후손들에게 돌리라는 지극히 어리석은 말을 한다(마27:24-26). 그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계 각처에 뿔뿔이 흩어져서 디아스포라로 살면서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 특히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육백 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던 사건은 결코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듯이 첫 번째로 인류구원의 사명을 맡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했을 때, 하나님의 열심은 그 사명을 감당할 제2의 이스라엘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것이 바로 한민족이다. 어떻게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한민족을 특별한 섭리로 훈련시키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한 근거가 될 만한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

우선 한민족은 종교성이 매우 강한 민족이다. 종교성이 강하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치성(致誠)을 드리며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려했던 많은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이 ‘종교전시장’이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갖가지 종교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은 이런 종교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종교성이 잘못 방향을 잡으면 우상숭배로 나아갈 것이고, 올바로 창조와 역사의 주이신 하나님을 만나면 놀라운 부흥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급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민족적 특징이 있었다.

두 번째 근거는 한민족이 가진 이스라엘과의 역사적 유사성이다. 이스라엘이 대륙과 대륙이 만나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잦은 외침을 받았듯이 한민족 역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이유로 많은 고난을 겪었다. 또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의해서, 바벨론을 위시한 메대 바사, 헬라 그리고 로마에 의해서 식민통치를 받았던 경험이 있듯이 한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경험이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출애굽의 감격이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였듯이 한민족도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같은 민족끼리 원수가 되어버린 경험도 유사하다. 이런 이스라엘과의 역사적 유사성은 한민족이 어떤 민족보다도 성경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쉽고,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쉽도록 하는 요소가 되었다.

세 번째 근거는 자국어(自國語) 성경의 선재성(先在性)이다.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이전에 이미 자국어로 된 성경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선교지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과 물질과 정력을 쏟아 부어야만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민족 가운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이런 경우는 세계선교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다. 이 일의 핵심인물은 서상륜과 이수정이다.

홍삼 장사를 하던 서상륜은 1878년 만주에서 활동하던 로스 선교사를 만나 신앙을 받아들인 뒤, 1882년 최초의 한글판 쪽복음 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하고 발간, 보급했고 1883년에는 ‘사도행전’을 번역했다. 그가 만주에서 조선에 올 때 성경을 소지한 것이 검문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개신교 최초로 한반도에 세워진 교회인 소래교회는 바로 그에 의해 세워졌다.

홍문관 교리였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이수정은 덕망과 학식을 갖춘 온건 개화파 양반 학자였다. 그는 임오군란 중에 민비를 구한 공로로 1882년 일본에 건너갔다가 신앙을 받아들인다. 그가 일본에서 가장 크게 감명 받은 것은 일본의 근대화가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미국성서공회의 지원을 받아 1884년 한문성경에 토를 붙인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1885년 한글로 마가복음서를 번역했다. 언더우드(H. G. Underwood)가 1885년 4월 제물포항에 내릴 때 손에 들고 있던 성경이 바로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이었다. 이렇듯이 선교사가 입국하기도 이전에 자국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민족, 그것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다.

마지막 근거는 기독교가 우리민족에게 도입되는 정황이 다른 민족과 남다른 데가 있다는 것이다. 식민통치의 경험은 대부분의 2/3세계 국가에게 공통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들은 대부분 식민지통치주체와 선교주체가 동일했다. 피지배민족에게 선교는 서구 열강들이 자기 나라를 침탈하고 그 식민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복음이 자발적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수용되게 되고, 개종을 하는 경우에도 식민지 통치를 이용해 개인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으로 변질되기 쉬웠다. 즉 예수를 믿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었고, 개종을 하는 것은 식민지 세력의 앞잡이가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복음은 민족정신에 의해 총체적으로 거부되었고, 따라서 그 민족 가운데 복음이 뿌리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민족의 경우에는 식민지주체와 선교주체가 달랐다. 같은 동양인인 일본에 의해 식민지 통치를 받으면서, 서양의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을 전해 들었다. 따라서 교회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민족자존의 역량을 길러내는 우산과도 같은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이 곧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요, 교회에 나가는 것이 민족자존을 위한 실력을 기르는 일로 여겨졌다. 민족정신은 복음을 주도적으로 수용하게 되고, 이런 상황은 단기간에 복음의 꽃이 온 반도에 활짝 피어 나도록하는 거름이 되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전국에 있는 기독교회를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고, 민족지도자 33인 중에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기독교인이었던 것은 바로 이런 정황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만하면 하나님께서 한민족을 제2의 이스라엘로, 세계선교의 마지막 주자로 택하시고 훈련시키시고 계신다는 주장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에 도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일제 식민지를 통해 이 민족의 마음을 가난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도록 해서 제2의 이스라엘로 삼으려고 했다면, 해방을 통해 더욱 강한 국가가 되어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실 일이지, 어째서 남북의 분단을 허락하셨는가?”

우리 민족이 분단되어진 과정을 보면 참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남북의 분단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38도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각각 분할 점령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분단이 되려면 독일의 경우처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되어야지 어찌 한반도가 분단이 되어야만 했는가? 왜 소련이 일본이 무조건적으로 항복을 하기 겨우 엿새 전인 8월 9일에 참전을 결정하게 되었을까? 꼭 남북을 나누어서 무장해제를 했어야만 했는가? 등등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보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38선의 영적 의미에 대해서는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38선은 우리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시험문제”라고 주장했다. 나 역시 그 의견에 동감한다. 이 민족이 세계선교를 완성할 민족, 세계선교의 마지막 주자로 쓰임 받을 만한 자격을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했던 것이고, 그 절차가 바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단된 지 60여년이 넘도록 여전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민족은 갈림길에 서 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 민족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세계사에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그저 그런 수많은 민족들 중의 하나로 남을 것인가? 그 열쇠는 이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고,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인 것을 알고 있는 바로 나와 당신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북한선교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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