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동 주민들이 가진 '한(恨)'을 보다

포이동 현장활동을 통해 얻게 된 새로운 시선

김영준 승인 2011.08.24 23:03 의견 0

기독교 관련 아카데미에서 교육도 받고, 신학도 공부하면서 하나님 나라, 공평과 정의, 사회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뜬 나는 하나님 나라가 개인적(내면적), 미래적,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재적, 물질적인 것임을 알고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후 조금씩 현장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최근에 화재로 어려움을 겪는 포이동에서 현장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촛불집회와 같은 대규모 행사에 참석한 경험은 있었지만, 포이동 재건마을 같은 구체적인 현장 활동은 처음이다.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몇 년 전부터 활동한 ‘희년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약칭:희년사회)에서 사회선교위원과 총무(2011년)로서의 책임감도 작용한 것 같다. 또한 신대원을 졸업하고 나서 물리적인 시간이 생긴 것도 이런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

‘희년사회’는 사회선교 실천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지만, 아직까지 인원도 적고, 재정도 부족한 상황이다. 사무실이나 상근 근무자가 있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현장 활동은 단체차원보다는 개인적인 참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포이동 현장은 성경적으로 볼 때, 구약 레위기 25장의 희년법(토지, 주택, 노동, 대부)이 모두 무시 받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불법적인 토지변상금, 강제철거의 위협, 자활근로대 활동의 관리, 토지변상금에 대한 누적 이자, 수없는 인권침해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포이동 마을을 방문하여 현재까지도 틈틈이 필요한 일들을 조금씩 돕고 있다. 이 글에서는 포이동을 방문하고, 현장 활동을 하면서 깨닫게 된 몇 가지 점들을 나누고자 한다.

마을 주민들이 가진 깊은 ‘한’을 보다

 화마가 할퀴고 간 포이동 화재현장ⓒ더보이스
이동 화재 후 관련기사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된 나는 단체 회원 한 분과 포이동을 찾았다. 먼저 화재가 된 마을은 정말 폭격을 당한 것 같은 ‘폐허’ 그 자체였다. 탄 냄새와 여러 매캐한 냄새들이 코를 찔렀다. 거기서 주민대표이자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이신 조철순님을 만났는데, 거의 3시간 정도 포이동의 역사와 현재까지의 여러 상황 등을 들을 수 있었다. 방문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꽤 많은 방문자들이 포이동을 찾아와서 여러 가지를 물었을 것이고, 수없이 같은 말들을 계속 반복하셔서 지겨울 수도 있었을텐데 어떻게 우리들에게 3시간 가까이 설명을 또 해주실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오랜 시간동안 받았던 고통과 설움으로 마음속에 깊은 한이 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남구는 민원에 매우 민감하여, 민원이 발생하면 제법 빨리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하지만 포이동은 민원은커녕 오랫동안 마을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람은 살지만 주소지에는 등재되지 않은 곳이었다. 주소지가 인정되고, 주민등록이 등재된 것은 불과 2년 전인 2009년의 일이다.

포이동 주민들은 박정희 정부 시절 정부에 의해 강제 이주되었다. 늪지 같은 곳을 6개월 동안 연탄재 등을 퍼 나르고 비닐하우스 등을 지어 간신히 사람 살만한 땅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삶을 이어 오던 그들이 난데없는 불법체류자라 몰리는 기가 찬 일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총 25억여 원에 달하는 토지변상금 부과 등은 이들에게 자활과 삶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심지어는 두 부부가 자살에 이르게 하였다. 계속된 여러 행정상의 장애는 주민들에게 구청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낳게 하였다.

우린 보통 이러한 시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거친 모습을 보며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상황을 들여다본다면 오히려 이러한 거친 모습이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이다. 사실 잠시 들여다 본 포이동 사람들의 모습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공동체라 부르며 서로 오랫동안 의지하면서 살아 왔기 때문에 자신들은 정말 떨어져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철저히 개인주의화 된 이 시대에 정말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 아닌가!

노동ㆍ빈민 단체 등에 대한 막연한 반감과 선입견이 깨지다

사실 하나님 나라의 공평과 정의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형적인 보수적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왔기에 이러한 현장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민중가요를 듣거나, 선동적인 현수막 등을 보면 마음이 조금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곳 포이동 재건마을은 오랫동안 ‘민철연’, ‘사회당’ 등의 진보적인 단체들과 연대해 왔었기에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교회 교인들은 이러한 단체 이름만 들어도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나 역시 소위 좌파라고 하는 몇몇 진보단체들이 마을 주민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아주 조금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우는 조철순 대표님을 통해 장시간 동안 얘기를 듣고, 관련 자료를 보고 나서 해소되었다.

많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소위 ‘왕초’라는 사람이 이 마을의 왕 같은 존재였다. 어느 날 그가 마을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고 있고, 또한 마을의 철거 통보를 숨긴 사실을 알게 된 조철순 대표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거역하지 않았던 왕초에게 대항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사태를 해결해야 할지 몰라 결국 이런 일에 경험이 많은 단체(현:민철연)를 찾아가게 되었고, 그 단체의 도움으로 현재까지도 철거당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단체들 내에서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고 한다. 소위 강경파와 온건파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론 강경파들의 행동으로 단체 전체가 매도당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단체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로 인한 편견은 정당하지 못할 것이다.

왜곡된 언론의 위험성을 인식하다

 지난 8월 2일, 강남구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포이동 주거복구 공대위

화재 후 강남구청은 일방적으로 임대주택 제공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거부의사를 밝혔다. 신문기사와 마을 주민들의 반응만 놓고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주택을 준다는데 거부하는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가?”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구청에서 엄청난 액수의 토지변상금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주택 입주 후 언제 보증금을 압류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언론의 기만이다. 또한 제공될 임대주택들은 대부분 지하방으로 여름이 되면 비가 새거나 냄새가 심해 주민들은 또 한 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 이면의 사실 관계를 알지 못하면 오해할 수밖에 없다. 의도적으로 이런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 언론에 의해 사실이 왜곡될 수밖에 없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포이동 주민을 거부하는 부자들(?)

포이동을 접하면서 계속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한 가지 있었다. “왜 강남구청은 이들을 쫓아내지 못해서 안달일까?”라는 질문이다. 물론 그 땅이 노른자 땅이라 개발하면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강남구 전체의 재정을 생각하면 그리 큰 액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부유한 동네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들은 포이동 주민들과 대면하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다. 마을 앞에서 양재천 너머 앞을 바라보면 아주 가까이에 타워펠리스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타워펠리스 주민들은 포이동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까? 그래도 양심 있는 사람들은 포이동 볼 때마다 서로의 엄청난 빈부차이에 대해 불편하지 않을까?

공평과 정의를 행함에 있어 나에게 아직도 어려운 것은 긍휼(마 5:7)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들을 보며, “과연 나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는 사랑이 있는가?”라고 늘 자문한다. 핸리 나우웬은 “긍휼은 함께 고통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신영복 교수께서 말한 “상대와 동일한 입장에 서는 것”과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많은 포이동 현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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